이야기
복음나누기
연중 23주간 월요일
+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생각을 아시고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라고 명하신 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좋은 일과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한지를 물으십니다(루카 6,8-9).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손을 뻗어라’하고 말씀하시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성하게 해 주십니다(루카 6,10).
결국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합니다(루카 6,11).
앞선 복음들을 보면 그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쳐주실 때 죄의 용서를 먼저 말씀하셨던 것(루카 5,20)이나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모습(루카 5,30), 그리고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이삭을 뜯은 일(루카 6,20)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그동안 올바르다고 여기며 지켜오던 것들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 둘씩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기에 오늘 복음에서도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려는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지켜오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위협을 받지 않기 위해, 그래서 보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율법’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예수님을 속박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자신을 내어놓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약점을 가지고 다른 이들 앞에 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예수님께서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라고 말씀하시자, 어려움을 딛고 용기를 내어 일어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물론 예수님의 의지에 의해 그 사람은 치유가 되었지만,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모습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이끄심에 동참함으로써 자유로워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자유로워지려고 하다가 오히려 골이 잔뜩 나게 됩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자유로움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들을 자유롭게 해주시고자 하십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과 같이 우리들이 당신께 동참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예수님의 이끄심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 자유로움을 찾으려고 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같이 자신만을 바라보게 되어 올바른 일, 즉 ‘좋은 일’과 ‘목숨을 구하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끄심에 동참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손을 뻗어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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