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죄와 불행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1-10-22 10:06

조회
1578

가해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루카 13,1-9)

 

 

죄와 불행

 

찬미예수님! 우리는 흔히 우스갯소리로 누가 큰 행운을 얻거나 부러울 정도로 좋은 일이 생기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하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불교의 영향에서 온 것인데, 전생과 후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윤회설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우리 가톨릭에는 전생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큰 불행이 닥치게 되면 우리는 전생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지난 번 일본에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일본이 우리나라에 잘못을 많이 해서 그런 거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은 가톨릭의 4대 교리 중 하나입니다. 벌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누구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도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는 살면서 고통스럽거나 원하지 않는 불행이 닥쳐오면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지은 죄의 크기에 따라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죄가 많아서 변을 당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죄에도 질과 양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경미한 죄는 소죄라고 하고, 죽을 죄는 대죄라고 합니다. 그리고 죄를 많이 짓기도 하고 적게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모두 죄입니다. 죄를 많이 짓지 않았다고 해서, 또 경미한 죄라고 해서 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죄가 많으면 큰 불행을 만나게 되고, 죄가 적거나 경미하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죄가 있다면 누구나 회개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그렇게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는데 어째서 그런 벌을 받지 않는 것입니까?’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고도 멀쩡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선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억울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오늘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주인이 잘라버리려고 하자, 포도재배인이 올해만 그냥 두어달라고 청합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온갖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그 때 잘라 달라고 청합니다.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곧 회개를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환호송에서 보듯이, 하느님께서는 악인이 죽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악인들이 벌을 받지 않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회개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누구나 예외 없이 벌을 받겠지만, 회개한다면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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