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연중 제 30주간 목요일 강론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1-10-28 00:48

조회
1556

†찬미예수님!

 

재밌는 이야기로 먼저 강론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어느 날 술집에 신자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난 본당신부님이 그 술집에 있는 신자들을 모두 데리고 성당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엄숙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당에 가고 싶은 사람은 모두 오른쪽으로 모이시오.”

 

그러자 모두 그쪽으로 걸어갔는데, 한 사람만 고집스럽게 제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험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천당에 가고 싶지 않소?”

 

그러자 그 사람이 “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님께서 다시 한번

 

“그래, 거기 서서 죽어도 천당에 가고 싶진 않단 말이오?”

 

라고 다시 한번 묻자 그 신자는

 

“물론 죽어서야 가고 싶지요. 저는 신부님이 지금 가고 싶냐고 물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힌두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놀라움들 중의 놀라움은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죽었는데도 어떤 이유 때문인지 우리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 자주 잊고 살게 됩니다. 위의 이야기를 꺼냈던 이유는 오른쪽으로 간 많은 이들처럼 우리가 정작 죽는다는 사실을 쉽게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우리는 내가 가진 지금 당장의 불편함이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애쓰느라 바쁩니다. 그것이 타인을 죽을 맛이 나게 하고 나 자신도 죽음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인지도 자각하지 못한채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들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며 당신께서 이미 당신을 반대하는 이들로부터 박해를 당하시며,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사형을 받으실 것임을 알고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죽음이 점차 다가오고 있음에 충분히 도망가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죽음에 직면하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것은 오늘 독서에서 나타난 것처럼 우리 인간을 위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을 부르시며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그들의 백성을 모으시려고 하셨으나 그렇게 되지 않으심을 한탄하십니다. 당신께서 죽음마저도 맞이하며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알려주시려 하는데, 정작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명예나 권력에 정신이 팔려 의롭지 않은 일들을 하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마저 죽이려 하고 있으니, 아마도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사건을 맞이하게 됩니다. 내 자신과 부딪히게 되는 사건들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의롭지 못하게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기도 하고 내 자리를 자꾸 지키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안의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가 비면 너무 불안해서 계속 다른 무언가로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항아리를 채우는 것은 내가 아닌 하느님이신데 말입니다.

하느님의 평화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정확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현재 어떤 모습인지, 지나온 삶에서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어떤 마음에 상처들이 있었는지 직면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내 자신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흔들리지 않는 평화는 여기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을 지혜로운 처녀들이 신랑을 맞이하듯이 항상 내 현재의 솔직한 모습을 바라보며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랑은 어느새 내 곁을 지나가버리고 말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 자체를 죽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헛된 것으로 채워 나를 천천히 죽음의 길로 몰고 가는 것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에 두려움을 느끼는지 묵상해 보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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