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가해 위령의 날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1-11-02 16:46

조회
1369

가해 위령의 날

 

 

산 이와 죽은 이의 통교

 

찬미예수님! 오늘은 이미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교회에서 특별히 정한 위령의 날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교회에는 이미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추도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특히 기일에 모여 그날에 세상을 떠난 이를 기리기 위한 행사를 갖고, 술을 바치는 등의 전통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내고 있는 위령의 날은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998년 클뤼니 수도원장이었던 오딜로가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다음날에 특별히 죽은 이를 위해 전례를 거행할 것을 명하면서 교회 전체로 확대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오늘 그리고 11월 한 달 동안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성인의 통공’입니다. 성인들은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며, 동시에 이미 하느님 나라의 구성원이 된 이들입니다. 이 성인들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와 전구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쉽게 말하면, 이미 죽은 이들이 산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실제로 영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시작도 끝도 없으신 하느님 앞에서 삶과 죽음에 관련된 시간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치로 산 이들도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산 이들이든 죽은 이들이든 모두 같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바로 연옥에 대한 교리입니다. 교회는 죽은 후의 상태에 대해 천국과 지옥의 극단적인 두 갈래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 이른바 연옥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연옥이란 말은 한자 뜻으로 보면 쇠붙이를 불에 달구거나 굽는다는 뜻을 지닌 연(煉) 자와 감옥을 뜻하는 옥(獄) 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옥에 대해 무섭고 또 고통스럽다는 인식을 갖습니다. 하지만 본래 연옥을 뜻하는 라틴어는 ‘푸르가토리움’(Purgatorium)이라고 해서, 우리말로 하자면 순수해지는 곳, 또는 정화되는 곳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죄를 지으면 벌을 받습니다. 고해성사를 보면 우리의 죄는 모두 없어집니다. 하지만 벌은 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제가 내리는 보속을 통해 그 벌을 대신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보속을 모두 이행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벌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에는 우리가 모르고 지은 죄, 기억하지 못하는 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는 동안 우리가 알지 못하고 지은 죄에 대한 잠벌들을 대신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보속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살면서 그 보속을 다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해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연옥입니다. 이 보속을 다해서 완전히 순수해지면 그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데, 우리가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죽은 뒤에 영혼이 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옥에서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게 정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연옥 영혼들을 크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전대사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11월 1일부터 11월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참배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조건을 갖추는 이들은 연옥 영혼들에게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상교회는 성인들이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천상교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산 이와 죽은 이들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모든 성인들이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는 것처럼, 연옥에 있는 영혼들과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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