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선택의 결단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로마 16,3-9.16.22-27
루카 16,9-15
† 사랑합니다
에스키모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늑대 사냥을 한다고 합니다. 날카로운 칼날에 뒤덮을 정도로 피를 발라 얼리고 그 일을 계속해서 칼날이 완전히 피로 굳어질 때까지 바르고 얼립니다. 다음은 그 칼을 하늘을 향해 세워서 땅에 단단히 고정시킵니다. 그러면 늑대는 예민한 코로 냄새의 근원인 미끼를 찾아와 얼어 있는 신선한 피 맛을 보며 그것을 핥기 시작합니다. 녀석은 더 빨리 더 맹령하게 핥기 시작해서 드디어는 날카로운 칼날이 보이기까지 핥게 됩니다.
하지만 늑대의 식욕은 너무나 강렬해서 자신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칼끝을 핥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늑대는 자기가 흘린 따뜻한 피로 그칠 줄 모르는 갈증을 채우고 있는 것조차 모르게 됩니다. 늑대의 식욕은 아침 해가 뜨기까지 계속되어 드디어 주검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깊은 유혹에 빠져들면 모든 것이 파멸로 이어지게 됩니다. 달콤한 것으로 유혹되어 자기가 죽어가는 줄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은 에스키모의 늑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에 사람을 잡는 대표적인 것들은 아마도 세상의 재물과 권력 그리고 명예일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모두 골고루 가졌던, 미국의 유명한 백만장자 25명에 관한 신상조사가 발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25명 10명이 자살을 했으며, 5명은 이혼으로 가정파탄을 일으켰으며, 3명은 알콜 중독자가 되었고, 5명은 도박과 부정으로 망했으며, 오직 2명만이 평화롭게 살았는데, 그 2명은 사회사업가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행복을 주었어야 할 재물, 권력 그리고 명예가 어찌 그들을 그토록 비참하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사람이 재물을 종으로 삼고 지배했어야 했는데, 명예와 권력을 조정했어야 했는데, 재물과 권력 그리고 명예가 그들을 종으로 삼고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유혹의 대표적인 것들, 즉 세상의 재물과 권력 그리고 명예로는 결코 행복을 살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16,13)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유혹의 뿌리는 바로 하느님께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혹은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의 이 말씀은 매 순간 “하느님을 섬기느냐” “세상을 섬기느냐”의 물음 앞에 서게 되는 우리에게 아무리 세상의 중요한 재물이어도 하느님보다는 중요할 수 없다고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유혹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유혹도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멀어지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혹으로 이겨내고 하느님을 섬기는 삶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해답을 예수의 길에서 찾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사탄에게 재물과 명예 그리고 권력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사탄의 유혹은 언제나 그럴 듯하고 달콤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사탄이 제시한 재물과 명예 그리고 권력의 길을 돌아보지 않으시고, 고통스럽고, 힘들며, 모든 버리고 끊어버리는 길을 선택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예수의 모범입니다. 예수의 모습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멀게 만드는 유혹들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시는 모범입니다. 유혹이 결코 없을 수는 없습니다. 늘 깨어 기도하고 매 순간 나에게 주어지는 것들을 하느님의 삶의 중심에 두고 그분만을 섬길 때 우리는 그것들을 식별하고 분별하며 사탄의 교묘하고 달콤한 유혹에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유혹 속에서도 끝까지 하느님을 믿고 의탁하였듯이 우리도 예수께 기도하고 의탁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분명 오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삶의 중요한 결단의 순간에 우리는 예수께서 가신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조금의 망설임 없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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