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나 자신의 정화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1-11-07 22:01

조회
1444

가해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요한 2,13-22)

 

 

나 자신의 정화

 

찬미예수님! 이제 수능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위령성월이 시작되고 전대사가 주어지는 기간도 벌써 어제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수험생들과 세상을 떠난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미사 중에 기억합니다.

 

11월 9일인 오늘 교회에서는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지냅니다. 이 축일이 오늘을 사는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또 무슨 의미를 지니는 날인지 잠시 되새겨 보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 베드로를 주춧돌로 삼아 친히 세우신 교회는 초기에 박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313년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가톨릭교회를 국교로 한다는 밀라노 칙령을 내리면서 박해는 끝이 났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 때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의 별궁을 성전으로 봉헌하였는데, 그것이 라떼라노 대성전입니다. 그리고 11월 9일에 성전 봉헌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부터라고 합니다.

 

라떼라노 대성전의 봉헌을 축일로 지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라떼라노 대성전은 로마의 주교좌 성당으로서 “전세계 모든 교회의 모체이며 머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기념하는 것은 사도 베드로로부터 이어져 오는 교회의 일치를 고백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가 말하는 것과 같이 “사랑의 전 공동체를 이끄는” 베드로좌에 대한 존경을 드린다는 의미도 지닙니다. 또한 이 성전에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에 쓰셨다고 전해지는 식탁이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교황님께서는 성목요일 최후의 만찬 미사를 이곳에서 거행하십니다.

 

오늘 라떼라노 성전 봉헌 축일에 선포된 복음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방법은 장사꾼과 환전꾼들을 성전에서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과 돈을 바꿔주는 환전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시대에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했는데, 멀리서 소나 양, 비둘기를 가지고 올 수 없는 이들을 위해서 성전 안뜰에서 이 제물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있었고, 돈을 바꿔주는 환전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시며 이들을 몰아내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성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세우겠다고 하신 성전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오늘 예수님께서 정화하고자 하신 성전이 바로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그렇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코린토 후서 6장16절에서 우리가 바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코린토 전서 7장19절에서는 우리의 몸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 안에서 아주 흔하게 나의 이득과 손해를 생각합니다. 성당에 가면 무슨 이득이 있는가?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것이 나에게 손해는 아닌가? 우리가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하면서 마음 속으로 이득과 손해를 생각한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예수님께서 정화하고자 하시는 성전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정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완고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조금은 격한 모습으로 우리를 정화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맞아 오늘 하루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완고해졌는지 돌아보고, 이사야 예언자가 말씀하듯이 우리 각자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수 있도록 예수님께 의탁하는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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