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탈렌트의 비유
가해 연중 제33주일 (마태 25,14-30)
탈렌트의 비유
찬미예수님! 요즘에 TV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일컬어서 우리는 ‘탤런트’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연기자’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지만 ‘탤런트’라고 하면 대개 연기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본래 ‘재능’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옛날 화폐의 단위이기도 합니다. 한 탈렌트는 굉장히 큰 돈입니다. 비율로 환산해보면, 예수님 시대에 하루 품삯을 한 데나리온이라고 할 때, 한 탈렌트는 6000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한 탈렌트를 벌려면, 우리가 1년 365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일한다고 하더라도 16년을 꼬박 일하고도 160일을 더 일해야 벌 수 있습니다. 실로 엄청난 금액이지요.
그런데 오늘 비유에서 종들의 주인은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에게 이 엄청난 돈을 맡깁니다. 주인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를 종들에게 맡겼습니다. 물론 능력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주인이 탈렌트를 맡겼다는 것은 그만큼 이 종들이 주인에게 신뢰를 얻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이들은 믿을 만한 종들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 종들 중에 둘만 칭찬을 듣고, 하나는 쫓겨났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이 맡긴 탈렌트를 불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물건을 맡기면 거기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습니다. 맡긴 그대로 다시 돌려주는 것이 맡은 사람이 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다른 두 종은 주인이 맡긴 돈에 손을 댔고, 다른 하나는 그대로 숨겨두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주인의 돈에 손을 댄 다른 두 종이 더 잘못한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유를 생각할 때, 우리가 오늘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주인은 바로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에게 어울리는 탈렌트를 주셨습니다. 이 탈렌트는 다섯 개가 됐든, 두 개가 됐든, 모두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단 한 개의 탈렌트를 받았더라도 그것은 실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받은 종들은 그것을 활용하여 그만큼의 탈렌트를 더 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돌아와서 이렇게 한 것을 칭찬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통해서 나에게 없던 탈렌트를 더 벌어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받은 좋은 것이 있는데, 나 스스로 그 가치를 묻어두고 없는 것처럼 숨기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한 탈렌트를 받은 그 종과 같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겸손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태만입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이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이 탈렌트들은 모두 하느님의 것이고 다시 그분께 돌려드려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 개를 받은 사람은 다섯 개를 더 드려야 하는 것이니 하나를 받은 사람은 오히려 그보다 형편이 더 나은 셈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어떤 것을 받았고, 그것을 통해서 얼마나 더 갖추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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