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연중 33주간 화요일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1-11-15 09:57

조회
1517

+ 찬미예수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으레 서로 다름을 느끼곤 합니다. 성격의 다름, 외모의 다름, 능력의 다름 등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름이 때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여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정적으로 작용하여서 사람들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여러 사람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약점이 부각되어 소외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자캐오와 같이 말입니다.

 

세관장은 세리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세리는 죄인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자캐오의 집에 머무르시겠다고 하시자 사람들은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루카 19,7)”하고 말하는 것을 보면 당시 시대의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자캐오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 머무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자캐오는 기뻐하며 예수님을 맞아들이고, 자신의 재산을 내놓겠다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하는 자캐오를 보시고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라고 말씀하십니다(루카 19,5-9 참조).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죄인취급을 받고, 타고나길 작게 타고난 자캐오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재산을 모으지는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러한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예수님을 만난 후의 모습이 달라져 보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재산을 모았다면, 이러한 재산에 집착을 하기 마련인데 자캐오는 그동안 모은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왠지 부쩍 자유로워져 보입니다. 더 이상 자신의 재산에 매이지 않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어떻게 자캐오는 이렇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이는 바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죄를 지었던, 다른 이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던, 우리가 능력이 없던 예수님께는 그렇게 중요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10)”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어 느끼는 우리의 죄책감 안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우리의 약한 모습 안에서, 우리의 무능력한 모습 안에서 자캐오를 부르셨던 것처럼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하여 응답하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십니다. 구원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들, 부정적인 평가로 인해 느끼는 약한 모습들, 그리고 우리의 무능력한 모습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부끄러운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늘 율법을 지키는 그래서 그 당시 다른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교만으로 인해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께로 돌아서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로 돌아섬을 통해서 그동안 우리의 약한 모습으로 인하여, 매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를 자유롭게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께로 돌아선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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