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믿음이란 막연하고 무모한 것이 아닙니다.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마카 6,1-13
루카 20,27-40
†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은 죽은 이의 부활과 예수께서는 주님이시라는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죽은 이의 부활에 관한 믿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 다음 성경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주님이시라는 믿음을 말씀하십니다(루카 20,41-44).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파는 그들이 지식으로 알고 있는 성경(신명 25,5-6)의 말씀만을 받아들여,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죽은 이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두가이파는 그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지식만을 믿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말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처럼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자들은 사두가이파만이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 또한 사두가이파와 별반 다르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믿음으로 따르지 못한 안타까운 어느 수도자의 예화가 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수도자가 여행 중에 처음으로 가보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때는 겨울이서 잠을 잘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겨울이라 밤이 일찍 찾아와 어두운 산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수도자가 힘들게 길을 가는데 늑대 울음소리가 나더니, 늑대들이 뒤에서 달려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도자는 있는 힘을 다해 산길을 달렸습니다. 그런데 처음 가보는 길이라 그만 낭떠러지 쪽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수도자는 뒤를 돌아다보니 늑대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조금씩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앞의 낭떠러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달도 뜨지 않은 밤이라 더 어두워 낭떠러지 바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갑자기 늑대들이 달려들었습니다. 그는 뒷걸음치다 그만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아이구 하느님!” 하며 떨어지는데 손에 뭔가가 잡히는 것이었습니다. 올려다보니 절벽에 자란 소나무의 뿌리였습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위를 올려다보았는데 도저히 올라 갈 수 없는 절벽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동안 매달려 있었는데, 너무 춥고 힘이 들어 팔이 떨어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팔에 힘이 없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시면 당신께서 무엇을 시키시든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살려주마. 붙잡고 있는 뿌리를 놓아라.” 그가 대답했습니다. “이 뿌리를 놓으라구요? 그러면 저 아래로 떨어지는데요?” 그는 갈등했습니다. “내가 잘못 들었을거야. 그동안 한 번도 못 들어본 하느님 음성이 지금 들릴 리 없어. 악마의 유혹일거야”하는 등 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래 갈등 끝에 그는 결정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자신의 목숨을 원하실 리 없다고 생각하고 뿌리를 놓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침까지 버텨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팔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날씨는 더욱 추워져 그의 체온을 떨어뜨렸고, 그는 결국 나무뿌리를 꼭 잡은 채로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날이 밝고 보니 그는 절벽의 거의 밑 부분에서 자라고 있던 소나무 뿌리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의 밭에서 땅바닥까지는 2m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깜깜해서 안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다면 그는 얼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이 수도자처럼 실제의 경험, 곧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전부라는 사고 방식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는 것에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막연하고 무모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 “죽은 사람의 부활” 과 “하느님은 모든 산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말씀을 통해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음은 하느님이 우리 모두의 하느님이며, 세상을 구원하시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주시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의 믿음에는 분명히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음이 강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약하다고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마르코(922-24)의 말씀에 아들이 간질병에 걸린 아버지가 예수께 아들을 보여드리며,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하실 수 있으면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아이 아버지는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부족한 믿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그 아버지를 가엾이 여겨 그의 아들을 치유해 해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강한 믿음을 귀하게 보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부족한 믿음이나 솔직하게 부족한 믿음을 고백한다면 그 믿음 또한 귀하게 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족한 믿음까지 받아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매일매일 더욱 나아지는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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