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대림 제 1주간 목요일 강론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1-12-02 23:23

조회
1965

†찬미예수님!

 

중고등학생 때 학교를 다닐 때, 시험 며칠을 앞두게 되면, 저는 엄청난 시험계획표를 짜기 위해서 책상에 앉았습니다. 물론 그 며칠 전까지 저는 책상에 앉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원래 공부는 수업시간에 하는 거라며 수업시간에 자거나 그랬습니다. 어쨌든 오늘부터 안하면 이제는 내 자신이 싫어질 것 같아지는 며칠 전에 이제 앉아서 계획부터 짜는 것이지요. 벽에 붙여놓겠다는 마음으로 연습장 한 장을 찢어서 날짜를 세로로 죽 적고, 시험과목과 시험범위를 확인한 후, 시간과 분 별로 시험계획을 짰습니다. 엄청 꼼꼼하고 세심하게 짰습니다. 예를 들면 1시부터 2시 20분까지 교과서를 보고 10분 쉬고 2시 반부터 3시까지는 참고서를 보고 20분간 참고서 문제를 풀고… 지금 생각하면 로버트가 아닌 이상 지키기 어려운 계획을 몇시간을 해서 짰었어요. 그리고 다 짜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좋아! 이제 시작하자!’라고 했을 때부터 이미 계획표의 시간은 지나고 있었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못지키면 그런 계획표를 다시 짜고 안하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당일날 공부하고 그랬습니다. 왜 지키지도 못할 계획을 그렇게 저는 열심히 짯던 것일까요?

 

그건 제가 시험이 너무 싫고 자신감없고 불안하기 때문에 계획표라도 짜서 제 마음을 안정시키려 했던 것이지요. 실제로 계획표를 짜고 나면 공부를 다한 듯한 기분에 마음이 안정되고 딴짓을 시작하고 그랬습니다. 실행하지도 못할 것을 짜는 것은 그만큼 또 해내고 싶다는 꿈같은 것을 꾸고 있는 것이기도 했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주님!” 한다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고 싶어하고 이 힘든 현재의 삶에서 해방되고 싶어합니다. 누군가의 억압에서도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의 큰 착각 중 하나는 바로 예수님을 믿으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지’ 라고 기대하게되는 착각입니다. 즉,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안정을 얻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리거나, 혹은 내가 믿음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무조건 나를 탓하기 쉽습니다. 혹은 남탓을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팔레스티나 땅은 나무가 적고 바위가 많아서, 큰비가 오면 바로 급류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집을 지을 때 튼튼한 곳 위에다 짓는 것이 중요했겠지요.

 

여기서 실행이라는 말씀은 나의 심리적 안정만을 위해 기도생활이나 전례생활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우리의 삶 전체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의 중요성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삶 안에서 직접 활동하시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할지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불안하다고 해서 저처럼 계획표만 짜고 있다면, 정작 내가 지금 현재, 무엇을 어떻게 우선적으로 해야하는지 모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잘되고 행복하길 바라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그 고통이 나를 성숙하게 하고 내가 일어서서 걸을 수 있게 하시려는 의도이십니다. 내가 못나서 벌주려고 하시는 것도, 나를 미워하시는 것도 결코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 있습니다. 신앙 속에서 구원만을 생각하며 결과만을 중요시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지금 부족한 우리는 너무 불안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재창조 속에 있어서 희망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우리 삶의 작은 과정들이 사실 우리를 준비시킵니다. 지금 당장 불안해도 괜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면서 고통 속에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작 오셨는데, 우리가 눈이 멀어있어 그분을 못 보면 안되니까요.

 

대림 제 1주간이 시작되었고, 4일이 지났습니다. 전례력으로는 새해가 된 것입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의 손길이 나중에서야 느껴졌던 순간들을 떠올리시며 그분의 뜻을 묵상하시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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