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인간 생명의 존엄성
나해 대림 제2주일 – 인권주일 – (마르 1,1-8)
인간 생명의 존엄성
찬미예수님! 벌써 한 해가 시작된 지도 일주일이나 지났습니다. 교회는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대림 제2주일을 인권주일로 선포하였습니다. 인권이란 말이 오래된 것 같지만 사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닙니다. 불과 이, 삼백년 전만 해도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가 있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다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권이 삶 안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권이라고 할 때에,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왜 존엄한가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세상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 태어났고, 또 하느님을 스스로 닮을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생명을 지니고 있는 이상 하느님과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생명 자체를 존엄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존엄합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그런데 최근 의학의 발달로 인간 생명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생명을 언제부터 갖게 되는가,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들을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합니다. 의학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의학은 오직 인간의 생명을 지키고,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병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실 때 행하신 것입니다. 즉, 병을 고치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이것은 곧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생명이 위협을 받습니다. 인간 생명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생명을 가진 수정체, 배아를 살인하는 행위가 살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엄연히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오랫동안 의식이 없고 사람의 구실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죽이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반대로 이미 생명이 다한 사람을 기계와 약물에 의존하여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현상들은 의학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는 아들이 어머니를 죽이고도 8개월 간이나 방치하고, 또 왕따에 시달려 14살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성이 점차 개방되면서 천주교 신자들 가운데에서도 낙태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청년 여러분, 그리고 특히 지금 여기 있는 중고등부, 여러분들은 내 생명이 어디에서 왔고, 또 이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여러분들이 생명을 잃게 만드는 일에 동참하게 될 수 있습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1659 |
배반 예고 – 성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4.16 | 추천 0 | 조회 201 |
하느님의 사랑 | 2025.04.16 | 0 | 201 |
1658 |
말씀에 머무른다면 – 사순 제5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4.09 | 추천 0 | 조회 310 |
하느님의 사랑 | 2025.04.09 | 0 | 310 |
1657 |
계명을 스스로 지키고 – 사순 제3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3.26 | 추천 0 | 조회 625 |
하느님의 사랑 | 2025.03.26 | 0 | 625 |
1656 |
천사와의 만남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3.19 | 추천 0 | 조회 793 |
하느님의 사랑 | 2025.03.19 | 0 | 793 |
1655 |
듣고 믿어서 회개함 – 사순 제1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3.12 | 추천 0 | 조회 1048 |
하느님의 사랑 | 2025.03.12 | 0 | 1048 |
1654 |
먼지로 돌아감 – 재의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3.05 | 추천 0 | 조회 1389 |
하느님의 사랑 | 2025.03.05 | 0 | 1389 |
1653 |
새로운 복음의 방향 – 연중 제7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2.26 | 추천 0 | 조회 1601 |
하느님의 사랑 | 2025.02.26 | 0 | 1601 |
1652 |
청원 기도 – 연중 제6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2.19 | 추천 0 | 조회 1582 |
하느님의 사랑 | 2025.02.19 | 0 | 1582 |
1651 |
나쁜 생각을 물리치려면 – 연중 제5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2.12 | 추천 0 | 조회 1968 |
하느님의 사랑 | 2025.02.12 | 0 | 1968 |
1650 |
시련의 의미 –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2.05 | 추천 0 | 조회 2125 |
하느님의 사랑 | 2025.02.05 | 0 | 2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