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성탄을 맞이하는 두 가지 모습
나해 예수성탄대축일 낮미사 (요한 1,1-18)
성탄을 맞이하는 두 가지 모습
메리크리스마스! 성탄 축하드립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아주 기뻐합니다. 이날이 어떤 날인지는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이 주님께서 태어나신 날이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나라의 공휴일 가운데 하나이고, 방학 시즌이고, 세상이 크리스마스로 들끓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절로 신이 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기쁨과 오늘 주님의 탄생을 맞으며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기쁨은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의 성탄에 우리에게 주는 참 기쁨을 알기 위해서는 2011년 전 그날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던 때에,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아기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은 어떤 것이 있나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의 몸에서 태어나셨다는 것,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불리며, 주님께서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영원히 다스리시리라는 것 정도였을 것입니다. 이것조차도 천사가 와서 알려줘서 알게 된 것이지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예수님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었다면 장차 이 아이가 큰 인물이 되리라는 어떤 핑크빛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아이가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면 그 부모는 그에 합당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마련해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떤 부모라도 자기 아이에게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의 부모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그 아이의 탄생에서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아내인 마리아가 제대로 몸을 풀 자리조차 마련해 주지 못했고, 마리아는 낳은 아기를 따뜻하고 포근한 곳에 누이지도 못한 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어야 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슴 아픈 일입니까? 새 생명의 탄생은 그 집안의 경사이고 큰 기쁨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기쁨을 상쇄시킬 만한 슬프고 비참한 현실 속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세주께서 태어나셨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현실도 바뀐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처한 현실은 더 비참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 사도도 말씀하시듯이, 그분께서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너무나 기뻐한 나머지, 땅으로까지 내려와 하느님을 찬미하며 이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누가 가장 먼저 이 소식을 들었습니까? 시끌벅적한 세상 속에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 들에서 고요한 가운데 묵묵히 양들을 지키는 목자들이 가장 먼저 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예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기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요셉과 마리아가 처한 암울한 현실과 다름없는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고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성실하고 겸손한 모습에서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모습에서 성탄의 참된 기쁨을 가장 먼저 깨닫고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성탄 분위기에 젖어 그냥 성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성탄의 참된 기쁨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아무 것도 해 드릴 것이 없고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은 우리의 현실 속에, 그리고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우리의 모습 속에 탄생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기쁨에 감사하며 이웃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는 따뜻한 크리스마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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