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성가정의 참된 의미
나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22-40)
성가정의 참된 의미
찬미예수님! 오늘은 성가정 축일이며 교회에서는 가정 성화를 위한 주간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가정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성가정’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흔히 ‘성가정’하면 평화롭고 화목한 모습들을 많이 떠올리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기도하는 가정의 모습도 떠올리실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모두 성가정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가정’의 모습은 우리가 지금 생각한 이런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이 이루었던 가정은 실로 참담한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이 성가정이 겪었던 어려움을 전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사건은 대단히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이 기쁨은 곧 죽음의 공포로 바뀌었고,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에서 이집트까지의 거리는 어림잡아도 500km가 넘습니다. 차가 없었던 그 시절에 아이를 갓 낳은 산모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간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셉 성인은 혹시 아기를 죽이려는 사람이 쫓아오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면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성가정은 헤로데가 죽기까지 약 3-4년 정도 이집트 생활을 했는데, 아기를 죽이려는 병사들을 피해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계속 이동하며 지낸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런 모습은 확실히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늘 불안한 상태이고, 걱정과 근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먹고 살기조차 만만하지 않은 타국에서의 생활.. 우리는 성가정의 이런 고통스런 현실을 바라보며 ‘성가정’의 참된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가정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을 꿈꾸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걱정과 근심 속에서 가정 생활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집안 문제라서 드러내지 못할 뿐이죠. 부모님은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하고, 자식 걱정에 밤을 지새웁니다. 그러다가 부부나 부모 자식 간에 관계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 못할 어려움 속에서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아갑니다. 우리가 주님의 성가정을 본받는다고 할 때에, 물론 성가정이 겪은 어려움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우리도 어느 정도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비슷한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성모님과 요셉 성인,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꾸렸던 이 가정이 우리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그 해답에 관해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콜로 3,14) 그렇습니다. 그 해답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가장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요셉 성인은 성모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잉태 사실을 알았을 때, 그것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으셨던 이유가 바로 성모님을 그만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도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자식은 아니었지만, 그 사랑 때문에 수 년에 걸친 험한 이집트 피난길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성모님은 사랑으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아기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성모님의 전 생애를 통해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출산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험한 길을 요셉 성인만 믿고 따라갔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요셉 성인과 성모님께서 지니셨던 이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하느님 때문에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이 두 분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이집트 피난 길을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가정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그리 평화롭고 화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자식들을 사랑하면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성가정을 본받고 가정이 성화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전하는 모든 권고는 바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 성화 주간을 맞이하여, 이번 한 주간만은 가족들에게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을 표현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그동안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식들이 웬수처럼 생각되어서 그렇게 하기 어려우신가요? 그럼 여러분들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표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표현하지 말고, 행동과 실천으로 그 사랑을 전달하십시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갈라 5,6 참조)
이번 한 주간 가족들을 더 사랑하기로 결심하면서, 우리의 부족한 사랑을 채워주시도록 하느님께 간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1659 |
배반 예고 – 성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4.16 | 추천 0 | 조회 132 |
하느님의 사랑 | 2025.04.16 | 0 | 132 |
1658 |
말씀에 머무른다면 – 사순 제5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4.09 | 추천 0 | 조회 251 |
하느님의 사랑 | 2025.04.09 | 0 | 251 |
1657 |
계명을 스스로 지키고 – 사순 제3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3.26 | 추천 0 | 조회 368 |
하느님의 사랑 | 2025.03.26 | 0 | 368 |
1656 |
천사와의 만남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3.19 | 추천 0 | 조회 556 |
하느님의 사랑 | 2025.03.19 | 0 | 556 |
1655 |
듣고 믿어서 회개함 – 사순 제1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3.12 | 추천 0 | 조회 727 |
하느님의 사랑 | 2025.03.12 | 0 | 727 |
1654 |
먼지로 돌아감 – 재의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3.05 | 추천 0 | 조회 995 |
하느님의 사랑 | 2025.03.05 | 0 | 995 |
1653 |
새로운 복음의 방향 – 연중 제7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2.26 | 추천 0 | 조회 1201 |
하느님의 사랑 | 2025.02.26 | 0 | 1201 |
1652 |
청원 기도 – 연중 제6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2.19 | 추천 0 | 조회 1160 |
하느님의 사랑 | 2025.02.19 | 0 | 1160 |
1651 |
나쁜 생각을 물리치려면 – 연중 제5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2.12 | 추천 0 | 조회 1535 |
하느님의 사랑 | 2025.02.12 | 0 | 1535 |
1650 |
시련의 의미 –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2.05 | 추천 0 | 조회 1730 |
하느님의 사랑 | 2025.02.05 | 0 | 1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