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나해 연중 제3주일 (마르 1,14-20)
나해 연중 제3주일 (마르 1,14-20)
그물을 버리는 일
찬미예수님! 오늘 주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고 당신과 함께 할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께서는 능력이 출중한 이들 가운데에서 제자를 뽑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그 어떤 누구보다도 지혜롭고 현명하실 수밖에 없는 분께서 선택한 사람은 어부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어부들의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호수에 그물을 치고 있는 시몬과 안드레아에게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치고 있던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을 보시고도 이와 같이 하셨습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부에게 있어서 그물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어부는 고기를 잡아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고기를 잡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그물이지요. 그물이 없거나 허술하다면, 어부는 고기를 많이 잡지 못할 것이고, 그런 일이 계속 되면 그는 더 이상 어부로 생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물은 어부에게 있어 어부로서의 삶 그 자체를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시몬과 안드레아는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그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더 이상 어부로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마치 군인이 총을 버리는 것이나 대장장이가 망치를 버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 그물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르시기 전까지 나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그에 응답하기 위해서 그들은 지금까지의 나를 버린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 역시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 버린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와 삯꾼들을 배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아버지를 버렸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앞서 그물이 나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아버지는 그런 나를 있게 한 존재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는 나의 역사이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인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그것을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이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를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부르셨고, 지금도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입니다. ‘내가 너를 죽도록 사랑하니, 나와 함께 영원히 살자.’는 것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따라가려면, 우리는 지금까지의 나를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새로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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