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2-01-30 21:04

조회
1291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독서: 2사무 18,9-10.14ㄴ.24-25ㄱ.30-19,3  복음: 마르 5, 21-43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찬미 예수님! 오늘 독서에서는 낳아주고 길러 준 부모의 은혜를 모르고 도리어 반역하여 부모를 죽이려고 하였던 압살롬. 그는 하느님께 심판을 받아 결국은 죽고 맙니다. 그토록 속을 썩이고 힘들게 하던 아들 압살롬이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은 승리의 기쁨보다 아들 압살롬의 죽음이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며 목 놓아 웁니다. 그 어떤 기쁨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더 크기에 다윗은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슬픔을 참지 못합니다. 바로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아무리 잘못을 하고 힘들게 하여도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차라리 자신이 잘못되고 자식이 잘되면 부모는 행복합니다. 자기 자신은 아무리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더라도 자식이 잘되고 행복하면 부모도 행복하고 기쁩니다. 자식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이요, 자식의 기쁨이 부모의 기쁨입니다.

 

오늘 복음을 살펴보면, 어떤 회당장이 다 죽게 된 자기 딸을 살려 달라고 예수님께 청해 왔고 예수님은 죽은 그 소녀를 살려 주시는 기적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부모로서 자기 자녀가 병들어 죽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일 것입니다. 더구나 열 두 살 된 소녀의 죽음을 앞에 놓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는 아버지로서의 애통함과 회당장으로서의 어려움을 우리는 생각해 봅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신 부모가 아니면 열 두 살 꽃 같은 나이에 귀여운 자기 딸의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 어떠한 고통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며 말로 표현 못할 아픔일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그 아버지는 자기 딸의 죽음을 앞에 놓고 당시 회당장으로서 지켜야 할 종교적인, 사회적인 위치와 체면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애원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를 가진, 병들어 죽어가는 자녀를 살리기에 모든 것을 다 바치는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의 회당장이란 어떤 신분입니까? 유다교에서 회당장은 그 마을 안에서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는 이였고 유다 율법을 지키는 데 있어서 풍습에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반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있어서 율법을 무시하며 하느님의 뜻을 어긋나게 행한다 해서 회당에서 쫓겨난 자, 전통적인 신앙을 업신여기는 자로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아래서 회당장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 번째로 회당장은 사람들로부터 들어오던 ‘편견’을 따르지 않고 사실을 자기 스스로 알아보고, 편견을 떠나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도 우리 생활 속에서 편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기 발전을 저해하고 진실을 진실 그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가를 잘 체험했을 것이며, 편견을 가짐으로써 죄 없는 이웃을 얼마나 오해 했었는가를 체험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을 진실로 알아들어 자기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의 생각과 생활 속에 편견을 몰아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그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지위와 존엄성’을 버렸습니다. 그는 유다교 안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당시 방랑 교사였던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릴 수 있을 만큼 자기 자신의 사회적, 종교적 위치가 주는 명예와 자랑을 버리고 예수님의 진실 앞에 복종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습니까? 그 결과를 다른 이들보다 자신이 먼저 계산하였을 것이고 집안 식구들, 친지와 친구들 역시 계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아무리 자기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 하더라도 병이 호전되기를 받기 위함만으로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도움을 청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병의 호전되기를 위해서라면 회당장의 위치로서 자기 식구나 자신이 부리는 수하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오시게 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경우에 예수님께 직접 나왔고, 또 그가 지체하는 동안 딸이 죽었다고 집안 식구들이 그 소식을 알리고 있으며,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할 만큼 그 집안 식구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복음 안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즉 회당장이 그러한 반대를 무릅쓰고 예수님께 나와서 도움을 청했다는 것은 집안 식구들과 동료들의 반대의 눈초리까지도, 그들의 배척도 겁내지 않고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졌음이 드러납니다. 이에 예수님이 그의 청을 들어주시어 이미 죽은 그의 딸을 살리는 기적을 베푸셨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의 죽은 목숨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분, 다시 말해서 우리의 목숨은 물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주 예수님 안에, 그분의 권능 안에 있음을 알아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어떠한 위치에 있더라도 오늘 복음이 일러주는 회당장의 믿음의 자세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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