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봉헌 생활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2-02-02 00:18

조회
1446

봉헌 생활

                                                                                                                                         루카 2,22-40

 

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그의 부모들에 의하여 성전에 봉헌 됩니다. ‘봉헌’이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concecrata’로 봉헌이라는 의미와 축성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봉헌 즉 바치는 것이 되지만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축성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제사를 지낼 때 제사 때 쓰이는 제물의 일부를 바치면 그 나머지 부분은 하느님께서 축성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는 봉헌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즉 봉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그 봉헌으로 인하여 나머지 부분 곧 교회가 하느님의 축성을 받게 되어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주님께서 그의 부모의 손에 의하여 성전에 봉헌됨으로써 세상은 그로 인하여 축성되어집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봉헌처럼 수도자들도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교회를 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도자들의 봉헌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봉헌하는 것입니다. 즉 제사에 사용되는 제물이 죽어 봉헌되는 것처럼 온전한 봉헌을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뒤따르게 됩니다. 자신의 죽음으로써 교회와 더 나아가 이 세상을 축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봉헌 생활을 하는 우리는 온전히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봉헌 생활을 하는 수도자는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즉 어떠한 유용성이나 효율성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속적인 관점에서 봉헌 생활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의미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속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인가를 하고 있어야 하고 거기다 더 잘하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여 봉헌 생활을 평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봉헌 생활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즉 자신의 희생 죽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 없이 이룬 업적들은 하느님께 봉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적을 쌓는 것입니다. 봉헌 생활은 자신을 바치는 것이지 무엇인가를 만들고 무엇인가를 이루어내어 쌓아 그것을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도자들의 삶은 업적으로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써 인정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하여 자신의 나태함을 이러한 말로 변명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하여 갈리지 않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가끔씩 살아가면서 힘든 것은 피하고 자신의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수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 죽음도 따라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난과 고통은 피하고 부활만을 원한다면 이는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부활은 수난과 고통이 따르지만 그렇기에 그 부활의 기쁨은 더 없이 커집니다. 따라서 부활의 삶을 사는 사람은 기쁨에 가득 찬 삶을 살아 갈 것입니다. 비록 힘들 때도 슬플 때도 있겠지만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사는 사람은 부활이 있기에 기쁘게 살 것입니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은 수도자의 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하루 얼마나 예수님의 삶을 따라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 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기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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