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십자가 사랑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제1독서 : 1열왕 8,1-7; 9-13 복음 : 마르 6,53-56
십자가 사랑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겐네사렛 지방으로 가십니다. 그런데 그 지방 사람들의 모습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단번에 예수님을 알아보고는, 많은 병자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치유 받도록 합니다. 이웃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오는 그 사랑과 열정이 너무나 대단합니다. 복음에는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곳마다 병자들을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마치 119 구조작전을 연상케 하는 분주함과 긴박함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또한 이웃들을 위하여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이웃들을 대신하여 예수님께 간절히 청합니다. 참으로 지극한 이웃 사랑입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이러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 참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저는 이 성경 말씀을 접하면서, 어떤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성경 말씀이 연상되었습니다. 그 네 사람은 중풍에 걸린 이웃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지붕까지 뚫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달아내려 보냈지요(마르 2,1-12 참조). 참으로 대단한 이웃 사랑과 열정이지 않습니까? 이웃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없다면 하기 힘든 대단한 희생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음말씀과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성경말씀에는 어떤 단순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웃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저 이웃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그 커다란 권능으로 이웃들을 말끔히 치유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웃을 예수님께로 데려 오는 것이 바로 전교입니다. 이웃들에게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이웃을 위한 가장 큰 사랑의 실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신 분으로서, 세상 어떠한 것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는 우리 영혼의 치유자이자 구원자이신 분을, 공짜로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교는 단지 이웃들을 성당으로 초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당연히 아니겠지요. 이웃들을 성당으로 초대하고 나서도, 지속적으로 서로 동반하며 하느님을 전해주고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즉, 이웃들을 예수님께 데려다 주는 전교는 단지 이웃들을 성당으로 초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 순간의 삶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써, 지속적으로 이웃들에게 주님을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는 행위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 순간의 삶에서 이웃들을 예수님께로 데려다 주는 것이, 이웃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의 실천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이웃 사랑을 잘 실천하기위해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요건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을 사랑해서 예수님을 알아 뵐 수 있어야, 이웃들을 예수님께로 데려다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겐네사렛 지방 사람들이 만약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했다면, 많은 병자들을 치유 받도록 할 수 있었겠습니까? 겟네사렛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끊임없이 예수님을 갈망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단번에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병자들을 예수님께로 데려다 줄 수 있었고 치유 받게 할 수 있었습니다. 곧,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이 먼저 우선시 되어야 잘 실천할 수 있는 겁니다. 자기가 먼저 하느님을 알아보아야지 이웃들을 하느님께로 데려다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먼저 하느님을 알아보고 하느님을 체험한 그만큼, 이웃들에게 하느님을 제대로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 사랑을 통하여 먼저 하느님께 힘을 받아,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이웃들에게 다가가야지, 힘들지 않고 이웃들에게 하느님을 제대로 잘 전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웃 사랑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일은,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느님의 힘을 통하여 올바르게, 제대로 잘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첫째 계명이 하느님 사랑이고, 둘째 계명이 이웃사랑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마르 12,29-31 참조).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하여 이웃 사랑의 방법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먼저 하느님께로 나아가서 하느님을 뵙고, 그 다음에 이웃들을 하느님께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먼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기도를 통하여, 그 기도의 힘으로 이웃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간적으로 꼭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즉, 이웃을 대하는 와중에서도, 항상 먼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무엇이 하느님 뜻에 맞고 이웃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인지 항상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십자가의 세로축이 하느님 사랑을 의미하고, 가로축이 이웃 사랑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일본의 순교자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이 예수님과 같은 모양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순교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 복음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끊임없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진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십자가 사랑’을 일상의 삶에서 매 순간 실천함으로써, 비록 직접 피를 흘리는 순교는 하지 못하더라도, 일상의 작은 삶에서부터 매 순간 하느님과 이웃들을 위하여 순교하는, 충실한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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