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독서: 1열왕 8,22-23.27-30 복음: 마르 7, 1-13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찬미 예수님! 오늘 우리는 독서 말씀을 통해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솔로몬은 계약의 궤를 성전에 모신 다음 하느님께 솔로몬 자신과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기도를 들어주시길 청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명기의 말씀을 빌어 성소를 보살펴 주시고, 성소를 바라보며 올리는 기도를 들어주시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성소는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골라 주신 곳으로, 주님께서 직접 현존하시는 장소가 아니라, 당신의 “이름”이 현존하는 장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말씀하실 때 당신의 이름과 당신 자신을 동일화시키십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사랑을 받으시고, 찬양을 받으시며, 거룩하게 되십니다. 또한 하느님의 이름은 두려워할 이름이고, 영원하신 이름입니다. 또한 하느님은 그의 위대하신 이름을 위하여, 또 그의 이름 때문에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옹호하십니다. 그것은 하느님 이름의 영광을 위함이요, 또 하느님의 위대함과 거룩함을 인정받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임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사이의 논쟁을 보았습니다. 같은 하느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반대했고, 또 예수님은 그들을 왜 책망하셨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과 전통적인 유다인들 사이에 가로놓인 차이점의 핵심과 본질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질문을 받으신 것은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였습니다.
원래 유다인에게 있어서 율법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십계명을 가리켰고 모세 5경이라 부르는 구약 첫 부분인 5권의 성경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모세 5경을 보면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적인 윤리 규범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것들을 그들의 생활을 위해서 해석하고 적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4-5세기 전부터 율법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위에 말한 도덕적 원칙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대하여 해석하고 실생활에 세목별로 적용하고 정의를 내리고 수천의 규칙과 규정을 만들어내 구전으로 전해 오다가 기원후 3세기에 이르러 집약해서 기술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율법에 의하면,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하는 것은 위생상에 주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교적인 의식 행위로서 해야 하는 데에 논쟁의 초점이 있습니다. 모든 식사 전에 손을 씻어야 하고 요리가 바뀔 때마다 손을 씻어야 하고, 씻는 물은 특별히 큰 동항아리에 넣어 두어야 하며 그 물은 정결예식을 위하여 쓰여지는 것이기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손을 처음 씻을 때에는 양손은 손가락을 위해 향하게 하고, 그 위에다가 계란 껍질 하나 반 정도의 물을 부어 손목까지 흘러내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손이 젖어 있는 동안 양손 각각을 주먹으로 문지른 다음에, 손과 손가락 끝을 아래로 하고 물을 손목에서 손끝까지 흘러내리도록 부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래야 부정한 것을 씻고, 비로소 손이 깨끗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유다인은 하느님 앞에 부정하다고 하였습니다. 손을 그렇게 씻지 않으면 악령이 침범하고, 가난하게 되고, 파멸되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정통 유다인은 로마인에 의하여 투옥되었을 때 주어진 물을 먹는 대신 손을 씻는 데 사용함으로 해서 목이 말라 죽게까지 된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지키는 것이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향하여 반대하신 것이 바로 그러한 점을 지적하신 것이고, 진정한 믿음과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찰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은 매일 일정한 회수로 정한 시각에 그들의 신에게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기도용 돗자리를 갖고 다닙니다. 그 시각이 되면 어디서든지 그들은 기도용 돗자리를 피고 꿇어않아서 기도를 외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려고 칼을 휘두르며 추격해 가던 어떤 이슬람교도는 기도하는 종소리를 듣고는 그 자리에 즉시 머물러 서서 기도용 돗자리를 펴고 무릎을 꿇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기도를 외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죽이려고 쫓아가던 사람을 계속 추격해 갔습니다.” 이런 경우 그 기도는 단순한 형식이며, 습관이며, 외면적인 실행일 뿐입니다. 기거서 믿음의 진실성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생활도, 우리의 기도도 그와 같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잠시 묵상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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