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통하기 위하여 “에파타!”
2012년 나해 연중 제5주간 금요일
독서: 1열왕 11,29-32; 12,19 복음: 마르 7,31-37
통하기 위하여 “에파타!”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귀 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십니다. 그 기적을 보는 사람들은 매우 놀라워하지요. 함구하라는 명을 어길 정도로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놀랄 차례입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지내던 솔로몬이 어제는 한결같은 마음을 버리고 오늘은 그 결과가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1독서는 다윗 이전부터 노력해서 솔로몬 시대에 꽃피었던 이스라엘 왕국은 금방 시들게 될 것을 예고합니다. 어제의 독서 내용에서처럼 솔로몬이 그의 초심을 버리고 하느님을 멀리한 결과이지요. 그렇다면 이 왕국의 해체, 분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당연한 벌이나 반대급부로만 생각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사랑을 많이 받는 왕 다윗마저도 주님의 성전을 짓지 못했는데, 솔로몬은 젊은 시절 하느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신 것만큼이나 사랑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러한 역사의 이유를 닫혀서 분리된 마음, 하느님과의 소통의 단절로 보려 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사도 바오로가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를 들어 말한 것(1코린 12,12-27)을 모르는 이더라도, 우리 신체의 각 부분이 서로 잘 연결되지 못하거나 소통되지 않으면 몸 전체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병이나 장애를 하느님의 벌, 곧 하느님과의 분리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행동은 이런 상황에서 중개자와 구원의 길이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심과 동시에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에파타!”라는 말씀은 듣지 못해 말까지 더듬게 된 복음에 등장하는 이의 경우뿐만이 아니라 신체는 멀쩡하더라도 마음은 굳게 닫혀져서 하느님과 소통하지 못하는 백성들을 향한 외침이었을 겁니다. 귀와 입의 열림이 가장 필요한 것은 환자가 아니라 하느님과 단절된 이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 시기만의 이야기는 아니지요. 우리는 가끔 대화를 나누다 서로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저 사람은 말이 안 통한다. 혹은 참 말을 못 알아듣네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부끄럽게도 저의 경우는 가끔이 아니라 자주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곧 과연 나는 이야기를 들기 위해 마음을 열었는가? 라는 의문을 만나게 되지요. 스스로의 마음은 들을 준비를 하지 못하고 내가 할 말들만 잔뜩 준비한 채로 대화가 이뤄질리 만무합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하느님이 친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분께서 하는 말씀에는 귀를 열지 않고 자기 이야기들만 내뱉다가 결국 나중에는 자신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완전히 자신에게로 기울어진 닫힌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열기 위해서 주님은 언제나처럼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환자의 귀에 손가락을 집어넣으시고 당신의 침을 환자의 혀에 바르실 만큼 우리와 적극적으로 접촉하시려는 주님께,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열게 해 주시는 주님께 이제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열리면 통합니다. “에파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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