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고 세례를 받을 것이다.
연중 제8주간 수요일
독서: 1베드 1,18-25 복음: 마르 10,32-45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고 세례를 받을 것이다.
찬미 예수님. 베드로는 오늘 독서가 해당되는 베드로1서를 죽기 얼마 전에 로마에서 썼습니다. 베드로는 바오로처럼 뛰어나지도 않았고 문학적 재능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 베드로는 단순한 말로 맨 처음 박해가 시작되고 있는 아시아 지방의 그리스도신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바오로와는 달리 신앙을 명쾌하게 해석하고 정의 내리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표양을 제시하고 세례의 결과를 설명함으로써 격려하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세례를 받은 당연한 결과 다음에 오늘 독서 내용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코 뒤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불의한 사회와 세계를 용납하는 것은 노예살이에로 다시 되돌아가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피로써 바로 그 노예살이로부터 우리를 구출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계시므로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영원한 말씀을 듣고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형제들과 내가 갖고 있는 재물을 나누면서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를 그런 삶에로 초대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유다인들에게 잡혀서 당할 모욕과 죽음을 내다보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지만 그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은 생각이 정반대였습니다. 스승은 괴로워하는데 제자는 왕국을 꿈꿉니다.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이러한 청을 하는 것을 본 다른 제자들이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던 예수님의 왕국이 현세적인 것도 문제지만, 예수님의 생각과 우리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 얼마나 다른가를 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참다운 하느님 나라, 구원의 길을 말해도 하느님의 일과 말씀을 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현세적인 지위 영달을 바라기가 일수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진정 하루 일을 하는 속에서도 참다운 신앙의 행위가 무엇인가에 마음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여기서 잔은 유다인들의 은유로 생명과 경험을 뜻합니다. 시편 23장 5절의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의 경우는 하느님께서 주신 인생과 행복의 경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75장 8절의 “주님의 손에 잔이 들려 있으니 향료 가득한 거품 이는 술이라네”에서는 악한 자와 불복종하는 자에 대하여 분노의 심판이 준비된 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51장 17절의 “주님의 손에서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신 너”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미칠 재난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는 질문의 뜻은 너희는 내가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무서운 운명의 시련을 감당할 수 있느냐? 내가 당해야 할 증오, 고통, 분노, 죽음에 이르는 치욕 등을 다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습니다!”하였습니다. 사실 그들은 그랬습니다. 성경에 보면 야고보는 헤로데왕에 의해 첫 참수형을 당하였고(사도 12,2 이하) 요한은 갖은 고생을 해가며 요한 복음, 묵시록을 기술하면서 초대 교회의 산 증인으로 당시 사람들의 믿음의 초석 역할을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위, 안락을 위해서도 희생과 노력이 요구되지만 오늘 복음은 하늘나라에서의 높은 지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걸어야 할 길이 어떤 것인가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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