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사랑하는 것이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다.
사랑하는 것이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다.(마르코12,28-34)
오늘 복음의 내용은 가장 큰 계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신명기 6,4-5절의 내용을 인용하여 한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레위기 19,18절을 인용하여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 두 내용,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랑이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러한 사랑의 실천 보다는 무엇인가에 억매여 사랑을 실천하기 보다는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의 예로 규율과 규칙 또는 형식에 묶여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만을 지키면서 자신이 할 것을 다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때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장 큰 계명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과 삶이 더 중요함을 그리고 그를 낫게 해주는 그 사랑의 실천이 더 중요함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러한 행위가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받을 행위이며 해서는 안 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랑을 실천합니다. 이렇듯 사랑은 용기를 필요로 하며 그 사랑을 실천 할 때 대가를 치러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의 것을 포기하고 또 용기를 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때론 귀찮아서 아니면 내게 불이익이 돌아 올까봐 사랑을 실천하기를 꺼려하고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함께 살아날 것이고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이를 행하면 비록 지금은 그 사랑의 실천이 내게 손해인 것 같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꼭 그렇지마는 않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으로서는 이러한 말을 듣고도 이를 온전히 믿고 따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경우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린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자책하거나 자신을 비난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그분께서 용기를 주실 것이고 우리가 사랑을 실천 할 수 있도록 넘치도록 사랑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다고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행위와 처지를 정당화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한 나약하고 힘없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며 사랑을 실천 할 수 있게 그분께 청하고 그분께 의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린 어느 경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느님을 위한 것이고 다른 이들을 위한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사랑의 실천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는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처럼 가장한 사랑은 그 한계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린 진실한 사랑의 실천을 위해 그분의 사랑을 흠뻑 받아야 합니다. 그 무한한 사랑이 우리 안에 차고 넘쳐흘러서 퍼져나가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온전하고 진실된 사랑을 실천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 우린 형식주의에 매여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와 용기가 없어 사랑을 실천 하지 못하는 경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지 그에 대한 계명과 형식의 준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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