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독서: 2열왕 2,1.6-14 복음: 마태 6,1-6.16-18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찬미 예수님. 오늘 독서는 엘리야의 예언 활동은 본문에서 나타나듯이 여러 예언자 무리 중에서도 특별히 엘리사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엘리야의 예언이 바알교에 맞서 주님 유일신 신앙의 회복을 의도한 것이었다면, 엘리야의 뒤를 이은 엘리사의 예언 활동은 엘리야에 의해 소생된 주님 신앙을 한층 더 견고하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위보다 그 지위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 점을 심각하게 생각했으므로 자신이 받을 지위에 걸맞은 능력을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그러한 능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은 승천 장면을 목격한 순간이며 엘리사가 불 병거와 불말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느님을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이 조건은 장자권을 승계할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을 지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강조점이 엘리야에게 있지 않고 엘리야를 승천시키는 하느님의 행동에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기적을 행하기 전에 주님을 찾았으며 주님의 능력으로 요르단 강이 갈라질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은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제공해줄 수 있으며, 새 시대의 새로운 장을 개척해 나가는 원동력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떠나갔지만 엘리사는 이 힘으로 홀로서기를 단행했고 하느님을 부르면서 홀로 요르단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살펴보면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기도 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이상은 당시 선행을 하면 마땅히 그만한 보상이 있으리라 믿고 있던 유대인들의 생각을 바꿔 놓기 위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선행을 하고도 남에게 보였다고 해서 대가를 바랄 수 없다면 잘하려는 의욕이 없어질 것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은 선행을 하는 데 있어서 하느님의 보상뿐 아니라 남에게 자신을 보이기 위한 오만이 곁들여 있는 행위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이기 위한 선행, 남에게 인정받은 그 선행은 사람들의 인정으로 이미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는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할 때 흔히 어떤 보상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어떤 선을 행했다 해서 그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선행을 할 때 적게나마 또는 막연하게라도 어떤 보상을 생각하고 한다면, 그는 하느님을 회계원이나 재판관으로 생각하는 결과가 됩니다. 계산서를 제출하고서는 나는 이만큼 많이, 이런 좋은 일을 하였으니 이제 거기에 상당하는 보수를 청합니다! 하는 식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이 지적해 주고 있는 바대로,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일러주시는 방식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느 누구를 마음 깊이 또 예의 있고 열렬하게 사심 없이 사랑한다면 그에게 무슨 일을 해주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해와 달과 별을 다 주어도 부족하다 생각될 것이며 오히려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능력껏 다 해주고도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그러니 당연히 상대방에게 받을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앙을 가진 우리가 하느님 앞에 회계, 보상, 결산을 어떤 대가를 바라며 선행을 하는 것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건 없이 하고도 항상 더 못해서 부족한 마음을 갖는 것 사이에는 그 행위에 있어서나 마음자세에 있어서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이렇게 사랑이 깃든 겸손한 자의 선행만을 은밀히 모두 갚아 주신다고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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