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끊임없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나해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제1독서 : 2열왕 17,5-8; 13-15ㄱ; 18 복음 : 마태 7,1-5
끊임없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먼저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야, 자신이 뚜렷이 볼 수 있기 때문에,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 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는, 우리 이웃들과의 관계가 서로 심판하고 단죄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티를 빼내주면서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협조의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믿음이 성숙한 사람이 믿음이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로마 15,1 참조).
우리 안에는 티든 들보든,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크고 작은 “걸림돌”들이 있습니다. 요한 1서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1요한 2,9-10) 이처럼 이웃을 미워하는 감정도 그 걸림돌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꾸준한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을 잘 살펴서, 자기 안에 어떠한 걸림돌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 걸림돌들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한 꾸준한 기도생활을 통해서 먼저 믿음이 성장한 사람이, 믿음이 아직 덜 성장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눈에서 들보든 티든,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걸림돌들을 어느 정도 말끔하게 제거한 사람이, 아직 걸림돌들이 많은 사람을 도와 줄 수 있는 것이죠.
한 가지 예로, 아까 걸림돌 중에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는데요, 이처럼 이웃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는 것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커다란 걸림돌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걸림돌을 한 아름 안고 있는 사람이, 시기 질투하는 다른 이웃을 도와주기가 힘들지요. 오히려 그 미움에 동조를 하거나 더 부추길 수도 있을 뿐, 형제에게 사랑을 실천하라고 힘있게, 설득력 있게 말하기가 힘듭니다. 자신이 그 사랑을 아직 실천하지 못했고, 마음으로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길을 아직 잘 모르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사랑을 통해서 자신 안의 그 미움과 시기, 질투의 걸림돌을 치워야지, 바른 양심의 눈으로 환히 볼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잘 도와줄 수 있게 됩니다.
저도 공동체 생활을 하다보면, 다른 형제들로부터 시기, 질투를 당하기도 하고, 가끔씩은 저도 그러한 움직임에 휩쓸려, 저도 다른 형제들을 질투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걸림돌 때문에, 제가 평소에 존경하던 신부님과 상의를 한 적이 있는데요, 이미 그런 것들을 겪으시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먼저 걸으셨던 신부님께서 저에게 해주셨던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 신부님의 말씀은, 우리가 서로 시기, 질투하는 것은 서로 비교하기 때문인데, 우리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70억 인구 중에 하나도 똑같은 사람이 없이, 각자가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고유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는 모두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면서, 하느님으로부터 제 각각 고유한 재능을 받아, 각각의 위치에서 고유한 역할과 기능을 하면서, 서로 협조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비교하고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비교해서 시기, 질투하는 것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저는 저보다 신앙이 깊으신 선배 신부님의 도움을 받고, 제 안에서 시기, 질투하는 걸림돌을 상당 부분 제거하고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신앙이 먼저 성숙된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신앙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이 덜 성숙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대로 상대방을 함부로 심판하고 판단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자신만의 감정과 생각에 따라, 또는 자신의 편의에 따라 잣대를 대어 상대방은 엄격하게 판단하는 반면에, 자신은 관대하게 스스로 합리화시키는 오류에 자주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믿음이 성숙된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듣는 마음”(1열왕 3,9)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첫째로 중요한 것이 꾸준한 기도이고, 다음으로 지속적인 영적 상담도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제 경우를 말씀드리면, 저는 성무일도 외에 하루에 1시간 정도씩 꼭 개인적으로 기도를 바칩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기도드리고 있는데, 규칙적이고 꾸준한 기도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무척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신부님과 정기적으로 영적 상담을 지금 4년 째 하고 있는데, 신앙생활에 커다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마음으로 들음으로써 조금씩, 조금씩 자신 안의 걸림돌들을 제거하면서, 끊임없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즉, 눈에 들보도 티도 제거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변화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변화되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들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은 모두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매 순간 새로 나면서, 더 넓은 우물로 끊임없이 옮겨가고 있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눈으로 봄으로써, 계속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지만, 우리는 지상에서 전부 볼 수는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가 지상에서는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마치 눈에 콩깍지를 낀 것처럼, 어렴풋이 부분적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하느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면서, 곧 지복직관(至福直觀)하면서, 우리도 온전히 보고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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