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개와 돼지는 누구인가?
연중 12주간 화요일 강론
마태오 복음 7,6. 12-14
개와 돼지는 누구인가?
1. 오늘 복음의 의미
거룩한 것을 개에게,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거룩한 것은 하느님의 가르침이요, 진주는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마태 13, 45) 그리고 개와 돼지는 부정한 짐승을 의미합니다. 결국 오늘 말씀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개와 돼지 같이 부정한 자에게 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짓밟히고, 물어뜯기는 폭력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2. 개와 돼지는 누구인가?
때문에 오늘 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개와 돼지 같이 부정한 자가 우리 삶에서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하느님 말씀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도 결과는 폭력만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역설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삶을 살펴볼 때 우리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정한 자에게만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신 듯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부정한 자는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 죄와 악으로 물든 사람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일부러 찾고, 복음을 선포합니다. 구약의 율법을 충실히 준수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는 외면하고, 구약의 율법에서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을 찾아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죄인, 악령에 물든 자, 창녀, 세리를 찾아가 치유하고 구원을 선포하며, 모든 율법의 기본에 해당하는 손을 씻고 밥 먹기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을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구약의 율법에서 보면 전부 부정한 자입니다. 이와 같이 개와 돼지로 보이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철저히 준수하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는 도리어 외면하고 계시니 오늘 복음 말씀의 참 뜻이 무엇인지 의문에 빠지는 것입니다.
4. 시선의 변화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부정하다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과는 전혀 틀린 기준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루카 복음서에 나와 있는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루카 복음 18, 10-14) 그 비유에서 바리사이와 세리는 똑같이 성전에서 기도를 바칩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이 모든 계명을 지켰고, 단식도 하며, 십일조도 바친다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계명을 지킨 것입니다. 때문에 계명을 어기고 이교의 황제에게 봉사하는 세리들과 자신은 틀리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하느님 앞에서 얼굴도 들지 못하고, ‘주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하고 기도합니다. 세리는 누가 보아도 죄인이고, 부정한 자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기도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예수님께서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선언하신다는 것입니다.
고생 끝에 단식과 모든 율법을 지키고, 십일조도 바치는 바리사이보다 누가 보아도 죄인이고 부정한 세리가 바친 기도를 더 정의롭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현대식으로 이야기하면 교무금을 다 바치고, 금요일 단식을 지키며, 성사생활에 열심한 신자보다 일제 강점기 하에서 일본을 위해 일하는 매국노의 기도가 더 의롭다고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비유를 이해하는 길은 이 비유의 목적을 알 때 풀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에게 전하신다고 이야기합니다.(루카 18, 9) 곧, 모든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 더 나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결정적인 핵심은 모든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과 이웃 중에서 누구를 더 높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이 부정한 자, 곧 개와 돼지를 결정하는 예수님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5. 오늘 복음의 핵심- 겸손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도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사람이 개와 돼지이며, 이런 자에게는 복음말씀조차 폭력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실제로 바리사이는 모든 율법을 지키지만 기도와 행동을 통해서 폭력을 행사합니다.
바리사이는 기도에서 자신이 모든 율법을 지켰기에, 세리와는 틀리다며 그를 업신 여깁니다. 또, 하느님의 가르침을 핑계 대며 하느님을 죽입니다. 예수님이 재판받으실 때, 유대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소. 그 율법에 의하면 그 사람은 죽어 마땅하오.”(요한 19, 7)
이같이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가르침조차 폭력과 죽음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마태오는 하늘나라가 폭력을 쓰는 사람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마태 11, 12)
그렇다면 개와 돼지가 아닌, 복음 말씀이 참으로 열매를 맺는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자신을 낮추는 사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입니다. 복음서 전체에서 예수님은 이 점을 강조합니다. 즉,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높이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이러한 사람이 더 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웃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웃을 자신보다 더 낫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곧, 겸손한 자인 것입니다.
이런 이해를 했을 때, 오늘 복음의 또 다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남에게 해 줄 것을 찾는 사람에게 세상의 중심은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런 사람은 자신보다 타인을 높은 곳에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이러한 겸손함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곧, 겸손이 정의로운 것이고 교만은 하느님의 가르침조차 폭력의 도구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윱법의 실천보다 먼저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6. 반성
강론을 쓰면서 저 자신을 반성해 보았습니다. 신학교를 다니고, 하느님에 대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공부도 꽤나 잘해서 신학교도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마음에 가득 찬 것은 개와 돼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언제나 마음 속에는 비판과 편견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러한 생각은 다른 사람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항상 그 비판에는 ‘하느님, 교회, 수도자’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무슨 놈의 수도자가…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 하느님의 뜻은 …’. 이런 말로 시작하는 비판과 언어폭력이 일상적인 제 마음 속에서 가득 했던 것입니다. 제가 배운 것이 겸손과 섬기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폭력의 도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7. 기도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 이런 기도를 바칩니다.
“제가 남보다 부유하다고 생각될 때
저는 두렵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보다 높다고 생각될 때
저는 두렵습니다
주님께서는 낮은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보다 지혜롭다고 생각될 때
저는 두렵습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보다 선하다고 생각될 때
저는 두렵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작자 미상)
그러므로 주님, 모든 것보다 먼저 겸손하게 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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