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타볼산의 하느님을 겟세마니와 골고타에서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제1독서 : 다니 7,9-10; 13-14. 복음 : 마르 9,2-10
타볼산의 하느님을 겟세마니와 골고타에서도!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은 특히, 복음서에서 어느 위치에 놓여있는지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동하시는 경로라든지 말씀하시는 내용의 흐름을 파악하면, 복음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더욱 분명히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요한복음을 제외한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에서 모두 나타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은 이 세 복음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처음 예고하시고, 당신을 따르려면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신 내용 바로 다음에 위치합니다. 갑자기 예수님께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예고를 듣고, 그렇게 수난과 죽음을 겪으시는 당신을 따르려면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들을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그 전까지 제자들이 생각했던 메시아는, 어쩌면 여러 가지 치유의 기적을 많이 베푸는 화려한 권능의 메시아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 예고를 듣고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던 제자들을 예수님께서는 깨우쳐주고 싶으셨을 겁니다. 그래서 타볼산으로 데리고 가셔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뒤에 함께 따라올 영광스러운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높은 산을 오르는 고통과 죽음 뒤에는, 반드시 영광스런 부활이 뒤따라옴을 제자들이 느끼게 해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부 하느님과 대면하심으로써 지극히 거룩한 모습으로 변하십니다.
이에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초막을 지어 여기에서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립니다. 제자들은 엄청나게 황홀하고 강렬한 예수님의 모습을 체험하고서는, 그만 거기에 안주하고픈 유혹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말 속에 뼈가 있다는 말처럼, 강렬한 하느님을 체험하고는 겁에 질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말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변화되기 위해서 고통과 십자가를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고, 황홀함과 편안함에 머물러 거기에 안주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자신의 내면이 변화되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변화되는 데 따르는 고통 내지는 위험성이 두려워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지도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약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자신이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에 싸여서 현실을 회피하고픈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나약한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내면이 변화되는 데 따르는 고통이 없이는 새로 태어나는 부활도 없음을, 우리 삶이 죽음과 부활의 연속이라고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변화되는 데 따르는 고통과 십자가를 감수하지 않으면, 참 생명으로 건너가는 부활, 곧 파스카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약한 제자들을 나무라지도 않으시고, 묵묵히 몸소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곧, 예수님 본인이 하느님을 대면하시고 그렇게 황홀한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셨음에도, 거기에 안주하려 하지 않으시고, 다시 산을 내려가시어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지극히 황홀한 타볼산에 그저 머무르려고 하지 않으시고,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겟세마니 동산과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려 지체 없이 나아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결코 자신의 힘으로는 그런 엄청난 고통을 견딜 수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항상, 매 순간을 하느님 아버지께 의지하셔서, 하느님의 힘으로 사셨기 때문에 어떠한 고난도 극복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바로 타볼산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체험하셨던 그 권능의 힘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약한 우리에게 올바른 삶의 방식, 곧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타볼산에서 기도하신 다음에 그 기도의 힘으로 예루살렘으로, 골고타 언덕으로 다시 나아가셨듯이, 우리도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한 다음에 그 기도의 힘으로 살라고 초대하십니다. 타볼산에서 성부 하느님께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 발치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처럼, 하루의 가장 이른 시간에 4,50분 정도 기도한 다음에 일상으로 나아가면, 그 기도의 힘이 계속 지속되어서 하루 종일 그 기도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일상으로 나아가고, 기도하고 또다시 일상으로 나아가는 삶이 꾸준히 반복되면, 일상에서 찾아오는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들도 그 기도의 힘으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상의 고통들을 견뎌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주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여러 시련들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보여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커다란 고통의 겟세마니와 골고타에서도 황홀한 타볼산의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곧, 일상의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들까지도 하느님의 힘으로 수월하게 극복해나감으로써, 오히려 그러한 순간들이 하느님과 대면하는 거룩한 순간, 순간들로 변모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일상의 삶 전체가 하느님을 뵈옵는 기도의 순간들로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복음 말씀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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