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다해 연중 제26주일 (루카 16,19-31)
다해 연중 제26주일 (루카 16,19-31)
라자로가 천국에 간 이유
찬미예수님! 오늘 예수님의 비유에는 부자와 라자로가 등장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묵상할 것이 참 많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라자로의 모습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천국에 가게 된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라자로는 왜 천국에 가게 된 것일까요? 그저 살아서 많은 고통을 당했기 때문일까요? 오늘 복음에 의하면 라자로는 종기투성이의 몸을 지닌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늘나라에 가게 된 이유라고 한다면, 우리는 모두 종기투성이에 가난해져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라자로의 행위입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여러분은 이 구절을 보면서 떠오르는 다른 성경 구절이 있으십니까?
마태오 복음 15장 21-28절에는 가난한 여자의 믿음에 대해 나옵니다. 이 여인은 마르코 복음(마르 7,24-30)에 의하면 시리아 페니키아 지방의 여인으로서 이교도입니다. 이 여인은 여기서 예수님께 마귀를 쫓아내달라고 간청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듣는 사람이 기분나쁠만한 말씀을 하십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이 여인의 대답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예수님께서 감탄하실 정도의 믿음을 보인 여자가 한 대답이 무엇이었는지 아시겠지요?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 대답이 바로 라자로의 살아생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을 통해 라자로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라자로는 예수님께서 감탄할 만한 믿음을 지니고 살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라자로’라는 이름입니다. 이 비유의 후반부에 가면 부자가 불 속에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라자로를 살리십니다.(요한 11,1-44 참조) 그러나 최고 의회 의원들과 바리사이파, 대사제들은 라자로를 살린 바로 그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요한 11,53 참조) 즉, 이 비유에 등장하는 ‘라자로’라는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시이며, 부자의 가족들은 그 부활을 경험하고도 믿지 못했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들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라자로의 종기를 개들까지 와서 핥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아닌 개들마저 그 처지를 불쌍하게 여겼다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모습은 마치 이사야 예언자가 했던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떠오르게 합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이사 53,3-4)
결국 이 비유에서 말하고 있는 라자로는 예수님께서 탄복하실 만한 믿음을 지니고, 수난하신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그 길을 따라 살았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라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에 합당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부활은 죽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라자로를 묵상하며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바로잡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일본어 역)
C年 年間第26主日(ルカ16章19~31節)
今日、イエス様のたとえには金持ちとラザロが登場します。今日の福音には黙想することがたくさんありますが、今日はその中でもラザロの姿に注目してみようと思います。イエス様はラザロが天国に行くことになったことをお話になります。ところが、ラザロはどうして天国に行くことができたのでしょうか。 ただ生きている間に多くの苦しみを受けたからでしょうか。 今日の福音によると、ラザロはできものだらけの貧しい人です。しかし、これが天国に行くことになった理由ならば、私たちは皆できものだらけで貧しく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ここで注目するべきところはまさにラザロの行為です。福音では次のように述べています。「(ラザロは)その食卓から落ちる物で腹を満たしたいものだと思っていた。」皆さんはこの言葉を聞いて、他に思い浮かぶ聖書の言葉がありますか。
マタイによる福音の15章21節から28節ではカナンの女の信仰について述べられています。この女はマルコによる福音によると、シリアのフェ二キアの地方の女で、異邦人です(マルコ7;24~30参照)。この女はここでイエス様に娘の悪霊を追い出してくれるよう懇願します。この時、イエス様は聞き手の気持ちを害するようなことをお話になります。「子供たちのパンを取って小犬にやってはいけない。」しかし、この女の答えを聞いて、次のようにお話になります。「婦人よ、あなたの信仰は立派だ。」イエス様が感嘆するほどの信仰を表した女の答えは何だったのかご存じでしょう。「主よ、ごもっともです。しかし、小犬も主人の食卓から落ちるパン屑はいただくのです。」この答えがまさにラザロの生前の姿を描写しています。つまり、マタイによる福音を通じてラザロの姿を考えれば、ラザロはイエス様が感嘆するほどの信仰をもって生きたということが推察できます。
もう一つ、私たちが注目しなければならない部分は、まさに「ラザロ」という名前です。このたとえの後半部を見ると、金持ちは炎の中でアブラハムに次のように話します。「父アブラハムよ、もし、死んだ者の中からだれかが兄弟のところに行ってやれば、悔い改めるでしょう。」しかし、アブラハムは次のように答えます。「もし、モーセと預言者に耳を傾けないのなら、たとえ死者の中から生き返る者があっても、その言うことを聞き入れはしないだろう。」実際にヨハネによる福音によると、イエス様は死んでから四日も過ぎたラザロを生き返らせます(ヨハネ11;1~44参照)。しかし、ファリサイ派の人々と祭司長たちはラザロを生き返らせたその日、イエス様を殺すことを決議します(ヨハネ11;53参照)。つまり、このたとえに登場する「ラザロ」という名前はまさにイエス・キリストの復活の例示であり、金持ちの家族はその復活を経験しても信じられなかった律法学者とファリサイ派を暗示していると考えられます。
さらに、ラザロのできものを犬もやって来てなめたと言います。犬さえもその様子を憐れんだということでしょう。このようなラザロの姿は預言者イザヤのメシアに関する預言を思い起こさせます。「彼は軽蔑され、人々に見捨てられ、多くの痛みを負い、病を知っている。彼は私たちに顔を隠し、私たちはかれを軽蔑し、無視している。彼が担ったのは私たちの病、彼が負ったのは私たちの痛みであったのに、私たちは思っていた、神の手にかかり、打たれたから、彼は苦しんでいるのだ、と。」(イザヤ53;3~4)
結局、このたとえで述べられているラザロは、イエス様が感嘆するほどの信仰を持ち、受難を迎えられたイエス様に似た姿でイエス様の道に従って生きた人だと考えられます。このような人ならば、神様が約束された永遠の命を受けるのにふさわしいと思われませんか?
復活は死があってこそ可能です。イエス様は私たちに永遠の命をくださるために死を受け入れられました。ラザロを黙想しながら、命の道を開いてくださったイエス様に従うために改めて心正す一日となるよう期待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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