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연중 제4주간 금요일
+ 그리스도 우리의 빛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 매우 유명한 생물학자이자 세계적으로 석학이라 불리는 영국 출신의 리차드 도킨스라는 사람이 방문하였습니다. 뛰어난 언변과 논리성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석학에 매료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사람의 이름은 다소 생소하시리라 생각되지만 이 사람이 쓴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의 주된 내용은 제목과 같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 주장을 자신의 관점으로 매우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예수그리스도의 모상대로 복음이 일러준 대로 선을 향해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저자는 바로 우리가 선하고자 애쓰는 이유가 오로지 신의 인정과 보답을 얻거나 신의 불만과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이며 하늘이라는 거대한 감시 카메라에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것은 선이 아니고 도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분명 이 저자의 말은 관점에 따라 논리적이며 옳게 해석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자요한은 너무도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거나 깊은 모범을 보이지도 못한 체, 한 사람의 작은 간괴로 구세주에게 직접 세례의 은총을 베푼 세례자 요한은 그렇게 작은 쟁반 위에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믿고 따르는 주님이 알려주신 대로 헤로데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말하기를 주저 하지 않았습니다. 선을 향한 올바른 행위가 바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늘이라는 감시 카메라를 바라보며 자신의 선이 인정받고 위로 받기를 세례자 요한을 원하고 바랐을까요? 자신의 죽음 앞에서 단지 선을 인정받음과 보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아마 없을 겁니다. 그저 세례자 요한은 직접 우리 곁으로 찾아와 준 예수라는 구세주를 직접 보았고 그의 모습을 직접 체험하였고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저 구세주가 알려주신 대로 선의 행동을 행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우리가 사랑하고 따르는 예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수 많은 관점과 논리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도전에 어떤 자세로 응답해야 할지 깊이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그 고민은 직접 구세주를 목격하고 체험한 세례자 요한의 모범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있으며 나아가 현재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교회를 통해 더욱 그 답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전임 교황이신 베네딕토 16세는 현재의 교의에 많은 부분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베네딕토 16세는 누구보다도 수 많은 예수의 존재를 부정하는 도전에 대해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교종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고 우리의 교의를 지켜나가는 데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종 베네딕토 16세가 더욱 강조하였던 건 의심과 부정이라는 도전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응답이 아니라 오늘 하루 당신이 진정 웃으며 살고 있는지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진정 사랑이라는 마음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가 였습니다. 우리의 선을 향해 행동하는 이유는 바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이며 그 행복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체험하였을 때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체험은 선을 위한 행동에서 시작 됩니다. 그 선을 위한 행동의 시작은 바로 그 어떤 예언자 보다 위대한 세례자 요한의 초라한 죽음에서 볼 수 있듯이 겸손입니다. 이러한 겸손을 이미 우리의 장상이신 교종들은 이 시대에 몸소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주케토를 벗어 이젠 교황이 아니라 예수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라 말하여 늘 곱게 두 손 모아 인사하신 교종 베네딕토처럼 낮은 자에게 더 기쁜 미소로 화답하시는 교종 프란치스코처럼 오늘 하루도 겸손이라는 주님이 주신 가장 아름다운 본성 안에 머무시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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