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4월 25일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찬미예수님! 오늘은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에 따르면 마르코 복음사가는 알렉산드리아의 첫 주교였고, 그곳에서 62년에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유해는 9세기에 베네치아로 옮겨져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동물은 사자이지요. 그 이유는 마르코 복음서가 세례자 다음에 ‘들짐승과 함께 계신’(1,13) 예수님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네 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서술된 복음서로 알려져 있고, 그 구조는 독자들로 하여금 처음엔 불완전하게 예수님께 접근하였다가 베드로의 신앙고백(8,27-30)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임을 발견하는 것을 지나 마침내 로마의 백인대장이 십자가형을 당하신 예수님을 두고 ‘하느님의 참 하느님’(15,39)이라고 선언하는 골고타에 이르기까지 점차 명확한 그림으로 이끌고자 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르코는 베드로의 동행자로서 그가 저술한 예수님의 행적은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서술에 의존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코는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라며 확신에 가득 차 복음서를 저술하였습니다. 그러한 확신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가 가진 믿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를 말하고,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은 그가 직접 목격하지 않은 예수님께 대한 확신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확신을 우리의 사도직 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외국으로 파견되어 나가 계신 수사님들을 통해 더욱 더 확실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수사님들이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은 바로 믿음입니다. 물도, 공기도 다르고 특히 언어가 다른 외국에서 선교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은 사도직 실습 기간 동안 경험했던 외국생활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들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는 낯선 곳에 가는 것을 공동체의 의견이라고 선뜻 받아들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님들은 오늘 독서의 내용처럼 ‘모든 걱정을 하느님께 내 맡기고’(1베드 5,6) 공동체의 의견에 따라 각자의 소임지에 파견되어 갔습니다. 우리 모두는 순명 서원을 통해 장상의 의견에, 공동체의 의견에 따를 것을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이 순명의 덕은 베드로 사도가 이야기한 대로 겸손의 옷을 입어야만(1베드 5,5)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수도자이기 이전에 한계를 가진 인간이기에, 개인이 원하는 것도, 하고 싶은 일도 제 각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셨던 길을 따라 살겠다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순리를 거슬러 스스로 이 삶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이 삶은 세속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보다 요구되는 조금 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요구사항을 지킨다고 해서 우리가 세속 사람들보다 더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세속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뭔가 더 특별한 대우를 받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씩 겸손의 옷을 벗어버려 나중에는 벌거벗은 채로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속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기에 우리에게 더욱 더 요구되는 것은 바로 공동체의 의견을, 장상의 의견을 따르는 겸손의 자세입니다.
수도생활을 통해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겸손한 이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은 우리를 대적하는 악마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고 그 보호 속에서 우리는 마귀를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를 말하며, 뱀과 독으로부터 안전합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여러분이 받은 은총이 무엇이고, 또 얼마나 큰 은총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상기해 보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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