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 수난 기념일
찬미예수님! 여기 계신 수녀님들이나 수사님들은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십니까? 운동이나 취미 활동 등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다양합니다만 그 가운데에서 아마도 영화를 보는 것은 여가 시간을 즐기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영화 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실제로 있지 않은 장소와 사물들을 목격하기도 하며 감동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하고자하는 바의 모태가 되는 ‘소재’일 것입니다. 영화의 소재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인간의 역사적 사실은 가장 좋은 소재가 됩니다. 영화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서도 여러 역사적 사실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그 가운데에서도 1980년에 일어난 가슴 아픈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택시운전사’이죠. 군부독재에 대항하여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 시민들은 군인들의 총칼에 힘없이 쓰러져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권력을 향한 한 인간의 야욕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 요구하는 정당한 권리와 요구들을 폭력을 이용해 진압하고 묵살해 버렸습니다. 그날의 광주 시민들이 철저하게 고립되고 처형되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바른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당당하게 맞섰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한 세례자 요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폭력과 억압으로 대변되는 헤로데에 대항해 인간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인간이 보다 더 잘 살 수 있도록 내려주신 하느님의 법을 무시한 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또 자신의 명에를 지키기 위해 한 사람의 의인을 무자비하게 처형하였습니다. 그런데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탐탁치 않게 여긴 동시에 그의 말을 기꺼이 듣기도 했습니다. 헤로데의 이러한 행동들에 대해 어떤 글은 헤로데가 “요한의 말을 경청한 것으로 오해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몹시 당황해하면서도’(마르 6,20)라는 말은,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입장이 난처해져서 당혹스러워했다는 뜻입니다. 또한 ‘기꺼이 듣곤 하였다.’ 라는 말은, 경청했다는 뜻이 아니라, 뭔가 특이한 자극을 즐기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을 죽이라는 결정을 내릴 때에 ‘몹시 괴로워했다’(마르 6,26)는 말은,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이게 된 것을 몹시 괴로워했던 것으로 오해하기가 쉬운 말인데, 그것은 아닙니다. 전후 상황을 볼 때,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죽이게 된 상황을 괴로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솔한 맹세와 약속을 손님들이 비웃을까봐 괴로워한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며 헤로데의 행동들이 철저하게 자신의 욕심과 명예에만 결부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헤로데의 이러한 행동과 심경을 통해 그 안에 남아 있는 올바른 선택을 향한 올바른 양심의 조각을 생각해 봅니다. 사목헌장 16항은 “인간에게 있어서 양심은 마음속 가장 은밀한 핵심이며 지성소로서 그곳에서 인간은 하느님과 함께 있으며,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하느님의 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양심이 말해 주는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바른 말을 하는 세례자 요한을 감금하고 종국에는 처형하기까지 한 헤로데였지만 그의 양심의 소리는 세례자 요한이 의인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양심은 외적인 욕심 앞에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외적인 조건 앞에서 양심의 소리를 무시한 채,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위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한 것이지요. 이러한 선택은 비단 헤로데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도 경제권력, 정치권력 등 다양한 형태의 권력 앞에서 우리의 양심을 무시한 채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할 때가 빈번합니다. 그러한 선택을 통해 나의 외적인 욕구가 채워지거나 명예가 지켜질지는 몰라도 각자의 양심은 아파하게 됩니다. 올바른 것을 지켜내지 못한 데에 대한 자책감과 상실감은 외적인 욕구를 채웠다 하더라도 우리의 내적인 충족감은 채워주지 못합니다. 비록 내가 손해 보더라도, 내가 더 힘들더라도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내어 드린다면, 우리의 마음은 외적인 욕구를 채웠을 때보다 더욱 더 큰 내적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의 회개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지만 한 권력가의 사리사욕을 위해 자행된 폭력과 억압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곧 다가올 예수님의 죽음의 예표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는 우리들의 회개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양심의 소리를 무시한 채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그릇된 선택을 한다면 우리 역시 죽음으로 몰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 없이 넘겨지게 된 그 죽음은 부활의 기쁨을 결코 맛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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