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4월 8일 부활 2주일
오늘 복음말씀에서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 두려운 그 상황이 이해가 가십니까? 최근에 개봉한 영화 마리아 막달라에서 보셨나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침통하게, 그리고 우울하게 모여 있었고, 배반한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두렵고 무섭고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리라 믿었는데, 그 믿음이 사라졌으니까요.
그러한 두려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짜잔 하고 등장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도 보여주십니다. 제자들의 기분을 상상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분명히 죽었던 사람인데, 다시 살아나신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분이 어땠을까요? 살아생전에 예수님만 따르면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메시아니까, 높은 자리에 앉을 수는 있겠지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힘없이 돌아가셨고, 방에 모여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유다인들이 자기들도 잡아서 죽이면 어쩌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등장하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성경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진정한 사도’로 거듭나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없던 토마스는 결단코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토마스도 예수님을 보고 믿었습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면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올 수 있는지요?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답을 제 1독서에 찾습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자기 소유가 없는 삶. 그들은 이미 지상에서부터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자기가 소유한 것을 모두 사도들에게 내어놓은 이유는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셨다는 믿음 때문이고, 그 믿음으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고, 그것을 증언하였습니다. 그 증언을 받아들인 신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였습니다.
자, 이제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으셨습니까? 답은 ‘봉헌’에 있습니다. 나의 삶을 봉헌하고, 나의 재산을 봉헌할 때,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2천 년 전의 신자공동체는 모두가 다 자신의 재산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도 역시 주님께 내어놓았습니다. 내어놓음. 봉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오늘날의 우리도 그런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요?
저는 감히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능한데 조건이 붙습니다. ‘믿는 만큼’ 가능합니다. ‘내어주는 만큼’ 가능합니다. ‘믿는 만큼’의 다른 표현은 ‘마음을 여는 만큼’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하느님은 모든 것다 주고 싶어 하십니다. 헌데, 우리가 의심이 많아서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두는 만큼 밖에 못 들어오십니다. 우리 방에 창문을 살짝 열어두면, 그 만큼의 햇빛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햇빛은 우리 방을 환하게 비추고자 하나 우리 창문은 아주 조금밖에 열려있지 않아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2천 년 전 신자들은 성령의 힘으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습니다. 누구의 힘입니까? 성령의 힘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그들이 가진 사욕을 내려놓고, 재산을 사도들에게 바친 것입니다. 내려놓음. 우리가 가진 사욕을 내려놓아야 우리가 가진 것을 봉헌할 수 있습니다. 헌데 우리는 무엇이 사욕인지 잘 모릅니다. 무엇이 사욕인지 모르니까, 자신을 봉헌할 수 없고, 봉헌할 수 없으니 예수님을 뵈올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에 비유하면 좋을 듯 합니다. 새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은데, 새의 뒤편에 온갖 사욕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어있습니다. 사욕이 무거워서 도저히 날아갈 수가 없습니다. 날아갈 수 없음을 인지한 새는 자신의 뒤를 돌아다보고, 자신의 사욕들을 하나씩 하나씩 덜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 덜어낸 다음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오릅니다.
이 새의 사욕 덩어리의 종류는 많지만, 대표적으로 탐욕과 슬픔과 교만,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탐욕입니다. 온갖 재물을 더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과 더 유명해지고 싶고, 더 예뻐지고 싶은, 또한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하는, 그리고 더 좋은 차를 타고 싶은 욕심들 말입니다. 둘째는 슬픔과 근심, 걱정입니다. 탐욕이 가득차도 근심걱정, 탐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슬프게 됩니다. 온갖 욕구를 다 충족해야 하는데 이루어지지 않으니, 인생이 슬퍼집니다. 마지막으로 교만입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셨건만, 이 모든 것을 자신이 이룬 것이라고 착각하는 잘못입니다.
이 세 가지를 우리 안에서 잘 확인하고, 그것을 덜어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주님께, 성령께 열심히 의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원하시는 때에 그분의 방식대로 그것들을 없애주시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봉헌할 수 있고,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게 될 때,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이미 승리로 장식해놓은 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식탁에 우리 수저만 올려놓으면 끝나는 게임입니다.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탐욕과 슬픔과 걱정, 그리고 교만이 우리 몸과 마음 어느 구석에 붙어있나 먼저 확인을 하고, 그것을 내려놓으면, 우리를 하느님께 온전해 내어드릴 수 있고, 온전히 내어드리면 주님께서는 당신을 친히 보여주실 것이고, 그분을 뵈옵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힘으로,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 제일 마지막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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