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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4일 성 세례자요한 탄생 대축일 – 김성 세자요한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8-06-24 11:28

조회
1386

20180624 성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루카 1, 57-66, 80)

 

찬미 예수님!

 

영국의 모 방송국에서 수년 전에 청취자들에게 좋은 상품을 걸고 현상문제를 내었었답니다.

그 문제라는 게 무엇인가하면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요?’ 라는 문제였답니다아침에 풀잎에 맺힌 이슬장미 한 송이호숫가에 핀 수선화오래된 바위 위에 낀 이끼잘 닦여진 유리 구슬안개 낀 템즈강..등등 여러 가지가 응모되었는데,

심사위원들의 숙고 뒤에 1등으로 당선된 답은 우리 엄마의 눈이었답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청년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청년은 외출에서 돌아오다가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소식을 듣고 몹시 놀란 어머니가 가슴 졸이며

병원에 달려갔지만불행히도 청년은 두 눈을 실명하고 말았습니다멀쩡하던 두 눈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청년은 깊은 절망에 빠져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고 마음의 문을 철저히 닫은 채 우울하게 지냈습니다바로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가슴은 말할 수 없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청년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그에게 한쪽 눈을 기증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하지만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그는 그 사실조차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결국 한쪽 눈만이라도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식 수술을 마친 청년은 한동안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어야 했습니다그때도 청년은 자신을 간호하는 어머니에게 앞으로 어떻게 애꾸눈으로 살아 가냐며 투정을 부렸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습니다며칠이 지나 드디어 아들은 붕대를 풀게 되었습니다그런데 붕대를 모두 풀고 앞을 보는 순간 아들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그의 앞에는 한쪽 눈만을 가진 어머니가 애틋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얘야두 눈을 다 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네게 나의 장님 몸뚱이가 짐이 될 것 같아서

 

요한이라는 이름은 뜻은 하느님은 은혜로우시다하느님이 사랑하는 자주님이 불쌍히 보신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제 서품 동기가 같은 요한인데 그 신부님은 사도 요한입니다사도 요한과 세례자 요한은 성서에 드러난 특징처럼 그 성격도 매우 대비됩니다사도 요한이 매우 부드럽고 온화한 방면세례자 요한은 좀 거치면서 호방한 성격이 특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신약의 첫 예언자로 불리우며 주님의 길을 준비한 이로 칭송됩니다.

세례자 요한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우선은 예수님의 길을 미리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일 년에 딱 하루대략 7월 10일 경 속죄일에만,

그리고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대속할 제물을 가지고

성소에 와서 죄 사함을 받았지만 지성소에는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 사함을 위해

잡은 염소의 피를 속죄소에 뿌릴 수 있었습니다.

즉 이 날이 되어야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해 동안 지었던 모든 죄를

완전하게 사함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찾아가서 속죄제물을 드리고 죄를 용서받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그러나 이는 아무에게나 허용되는 것도 아니고성전에서는 끌고 온 제물을 부정하다고 하여 받아들이지 않고성전세도 환전하여 몇 배의 폭리를 취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관행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이가 바로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그는 요르단 강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하느님의 다스림이 가까이 왔다는 말입니다죄의 완전한 용서와 억압된 고통에서의 온전한 해방그렇게 고대하던 기쁨과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렇게 하느님께 돌아가겠다고 약속하고하느님만 바라보고그 증표로 세례를 받으라고 외칩니다.

 

요르단 강에는 전국에서 벌떼처럼 사람이 몰립니다성전으로 찾아갈 필요도 없고제물과 성전세를 바칠 이유도 없이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하느님의 도래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은 혁명이며 말 그대로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기존 질서의 파괴그리고 하느님 질서의 도래어쩌면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처럼 이미 이 세상에서는 예견된 것일 수 있습니다기득권을 가진 이들에게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로 여기는 군중들의 지지는 참 무서운 것이었습니다그렇게 세례자 요한의 주님의 길을 예비합니다오늘 복음에서 선언한 것처럼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시는”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나라하느님의 다스림을 먼저 선포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세례자 요한이 위대한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자신의 소명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군중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고 자신을 메시아로 여기면서 추대하려고 할 때도 요한은 단호히 말합니다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라고자신은 그리스도에 앞서 파견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일 뿐이라고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보내줍니다또 예수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베풀며이분이야말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언합니다.

 

성경에 남아있는 구절로만 유추해보아도 요한이 참으로 겸손한 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겸손은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인식하고 성찰한 이들의 특징입니다겸손은 또한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 이들의 특징입니다태중에서부터 예수를 만났던 요한은 본능적으로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알아보고그분의 흠숭합니다.

 

우리가 세례자 요한에게 배울 것은 이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이미 선포된 하느님 나라를 이제는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 한가지요나머지는 역시나 중요한 우리 스스로의 능력과 소명과 목적을 정확히 인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수도자로서 또 저는 사제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 서두의 어머니가 보여준 희생과 헌신까지는 못 미치더라도우리가 만나는 이들과 특히 우리 형제자매들과 정말로 알콩달콩 살아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의 다스림하느님 나라는 친교의 나라입니다친교는 서로가 마음을 열고서로가 자신 안의 어린이를 드러내고심지어 자신의 약함과 부끄러움어떤 영성가는 자신의 악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그 순간이 바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순간이라고까지 말했지요그렇게 될 때무미하던 일상은 산해진미처럼 맛을 더하고건조하던 일상은 장미향기 짙은초록내음 풍성한 숲길이 되고꽃길이 될 것입니다서로가 통교하는 순간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오는 순간입니다하느님이 발생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시공간에 얽매여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만남으로서 창조부터 영원까지 받아들인 이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주님으로 따름으로서 온 세상을 하나로온 피조물과 우주를 한 품에 품은 이들이 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교회에서 중히 여기고 축복하는 것은 그분이 바로 예수님의 공생활을 미리 준비하였고그분에게 인계하였고또 그분을 그리스도로 추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우리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될 때우리는 요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나의 주님,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진정 고백할 때 우리는 또한 세례자 요한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외국 출장에서 엘에이 주교좌 성당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는 성화를 하나 사왔습니다제가 요한이라서 사기도 했지만감히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신 분이 나의 주보성인임을.

그분을 알아보고자신을 정확히 성찰하고 자각한 그 세례자 요한을 조금이라도 닮아보려고 그 성화를 사왔습니다.

 

참으로 멀고 먼 길입니다시간이 지날수록명확해 지는 것은 저의 약함과 모자람입니다그래도 그런 길 앞에서 당당히 서서 크게 외치고멋지게 생을 살아간 분이 저의 주보성인임이 또한 용기를 줍니다.

우리 수녀님들도 모두 그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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