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2018년 8월 21일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김성 세자 요한
20180821 성비오 10세 교황 기념일(19, 23-30)
찬미 예수님!
미국에는 [19, 24] 이라는 멋진 클럽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오늘 복음 말씀의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우니 여기에서 실컷 재밌게 놀자라는 뭐 그런 의미의 클럽이라고 합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라는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분분합니다. 낙타라는 원어가 사실은 밧줄이라는 것이었는데 오타라는 해석부터, 바늘구멍은 그와 유사한 이름의 작은 문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까지 다양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참 어렵고, 그것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주님의 말씀으로 이해가 됩니다.
부자는 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울까요? 반대로 산상수훈은 첫 구절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라는 말처럼 왜 가난한 이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주님은 말씀하실까요?
저는 누가 더 하느님을 애타게 찾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고 봅니다. 회개라는 복음을 믿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내 마음을 바꾸고 몸을 돌려서 하느님을 향한다는 의미입니다. 부자는 그럴 동력이 약하지요. 풍요와 안정은 하느님보다는 나의 욕망에 충실하게 합니다. 가난은 반대로 끊임없이 더 나은 삶을 갈구하게 하고, 그것을 가능케 할 하느님의 은총을 기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와 가난은 어쩌면 하느님을 부르짖게 하느냐 마느냐의 바로미터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양성을 맡았을 때 형제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수도원은 예전 교부들이 사막을 찾아 들어 갔듯이 현재에 재현한 사막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수도원이 편하고 안정적이기만 하다먼 우리는 하느님을 절실하게 찾지 않게 된다고. 우리의 불편과 어려움을 하느님을 찾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고. 하느님을 더 찾을 수 밖에 없게 만든 곳이 수도원인데, 그 불편함에 함몰되어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기를 자주하곤 하였습니다.
한국에 와서 또 수녀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저 자신도 편안함에 함몰되어가지 않나 반성합니다. 어쩌면 안락이 주는 유혹은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과도 상통합니다.
다시 한 번 사막에 대해서, 바늘구멍에 대해서 묵상해 보아야하겠습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그 은총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협조하고 있는지 물어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최종 목적이기도 하지만 매일 같이 자신을 우리가 만나는 인사물 현상에서 계시하십니다. 그 진선미와 거룩함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빛을 그분의 신성의 조각을 만납니다.
그것을 놓치고 느끼지 못한다면, 내 형제자매에게 미소 짓고 관심 두고, 따스한 말 한마디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임을 가까이 와 있는 그곳에 손을 뻗어 닿게 하는 것임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헛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능하게 하느님이 움직이시도록 간청하고 허락하는 것은 또 내 작은 몫이기도 합니다. 협조. 협조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협조한 사람이 백 배의 몫을 받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 역동이 성령이 되도록 나를 열어야겠습니다. 내가 열리도록 그분께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야하겠습니다. 나의 약함과 나의 죄와 나의 악까지 그분께 다 드러내고 하소연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강함보다 나의 약함을 긍휼이 보시고, 나의 능력보다 나의 겸손을 어여삐 보시는 그분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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