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9월 8일 /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제1독서 : 미카 5,1-4ㄱ / 복음 : 마태 1,1-16.18-23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탄생 이야기 중에 예수님 이름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과거 장상 수사님은 학생 수사님들이 이름 뜻을 모르고 있는 것을 알고, 저희에게 100번 쓰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이름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그 의미는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1)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야만 했던 인간의 죄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인류의 죄인 원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인간이 지켜야 하고, 넘어서는 안되는 한계 였습니다. 악마의 유혹을 받은 인간은 자유의 남용으로 하느님 계명에 불순종 합니다. 이 죄로 인간은 하느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좋아하고 하느님을 무시합니다. 인간은 하느님 없이, 하느님을 따르지 않는 죄를 보여줍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죄입니다. 결국, 인간의 교만과 불순명으로 인간에게 죽음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구원해 주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하느님 없이, 하느님을 따르지 않음에서 벗어나,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뜻을 따름을 고민해 봅니다.
먼저 예레미야 예언서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백성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이집트로 갈지, 아니면 그대로 머물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의 군대의 사령관과 백성들은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청합니다. “아시다시피 본래 우리는 수가 많았는데, 살아 남은 사람은 이렇게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선생의 주 하느님께 문의하여 주십시오.”(예레 42,2-3)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여쭈어 부고 다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대로 따르겠다고 다짐합니다. 백성들은 “주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잘되겠습니까?”(예레 42,6)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가 이 땅에 그대로 머물러 살면, 나는 너희를 허물지 않고 세우리라.(예레 42,10) 나 만군의 주님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말한다. 너희가 기어이 이집트로 가서 타향살이를 하려고 한다면, 칼을 무서워 하여 이집트로 간다지만, 그 칼이 거기까지 너희를 쫓아가리라. 기근이 지겨워 이집트로 간다지만, 그 기근이 거머리처럼 너희에게 붙어 가리라. 마침내 너희는 거기에서 죽으리라.’” (예레 42,15-16)
하지만 온 백성은 유다 지방을 떠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를 생각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이집트로 도망갑니다.
이들은 예언자로부터 주님의 뜻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뜻은 알았지만, 따르고 싶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뜻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강론 준비와 관련이었습니다. 복자 수도원에서의 부제는 보통 1주일에 한 번 강론을 준비합니다. 저는 부제 서품 직후에는 방학이라 여유가 있었고, 호기롭게 2번하겠다고 했고, 허락되었습니다. 개학하고, 학교에 가보니,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학교에서도 1주일에 1번 강론을 써야 했고, 과제도 많았습니다. 저는 시간적인 여유가 되지 않아서, 부담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 저의 청은 거절되었고, 억지로라도 2번 강론은 해야 했습니다. 한 수사님은 제게 위로의 말로 ‘의무 방어전’이라도 하라고 했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수녀님도 1주일 2번은 무리라고 하시고, 저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성실하게 준비하리라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때론 밤늦게까지 준비하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시간 잘 보냈습니다. 부제 기간 끝나고 나니, 그 수녀님은 제게 2번 하면서 강론 연습에 도움이 됐다고 좋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어렵고,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주어진 어려움이 있을 때,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주님의 뜻과 관련하여, 임마누엘 표현과 함께 고민해 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 1,23)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당신의 행적과 말씀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에서 죽음을 피하고 싶으셨지만, 결국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셨고, 그 뜻대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예수님께서 따르신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고통과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 뜻은 내려놓고, 고통과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고통과 십자가는 하느님의 뜻이고, 예수님께서는 몸소 우리에게 알려주셨음을 잘 기억해야 겠습니다. 고통과 십자가에 대해 복자 알베리오네 신부님의 표현을 보며 마칩니다. “만일 지금까지 고통과 십자가가 없었다면 주님과 함께였는지 의심해 보십시오. 십자가가 무겁다고 느낀다면 주님이 함께 계시면서 사랑해 주신다는 표지이니 실망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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