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가난한 사람들은 왜 행복한가? –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가난한 사람들은 왜 행복한가?”
9월 9일 /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제1독서 : 1코린 7,25-31 / 복음 : 루카 6,20-26
오늘 말씀은 행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마태오 복음의 진복팔단 참행복(마태 5,3-12)을 알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참행복의 8가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루카 복음의 행복은 다릅니다. 루카 복음에서는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이 동시에 나옵니다. 행복의 조건으로,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련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위로를 얻는다고 전해주었습니다. 불행한 사람으로는 부유한 사람, 배부른 사람, 웃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의 재화를 소유하며 나누지 않는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경고하시며, 불행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가난은 행복이고, 부유함을 불행이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보고자 합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지, 그리고 왜 부유한 이들이 불행한지 보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실제적인 삶이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하느님께만 의지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을 찾는 삶이기에,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실제적인 삶에서 가난과 하느님의 나라가 연결됨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더 데레사의 일화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물질적인 모든 것을 전적으로 하느님의 섭리에 의존했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어느 누구도 거부한 적이 없었습니다. 데레사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줄 침대와 밥그릇을 항상 준비해 놓았고, 몸을 따스하게 해 줄 모포를 갖추어 두고 있었습니다. 데레사는 하느님 말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자신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걱정하시며 수많은 사례를 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걱정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계셨습니다.
콜카타에서 데레사와 자매들은 매일 3만명 이상을 책임집니다. 그들이 음식을 만들지 않으면 그들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어느 자매가 달려와 데레사에게 말했던 것을 아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수녀님, 금요일과 토요일에 필요한 식량이 떨어졌어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데레사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그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 아홉 시경에 빵을 가득 실은 트럭이 도착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빵이 실려 있었던 것입니다!
콜카타에 사는 어느 누구도 정부가 왜 휴교령을 내렸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학교가 문을 닫았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학교에 갈 모든 빵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틀 동안 우리 가난한 사람들은 배가 터지도록 빵을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데레사는 왜 하느님께서 학교 문을 닫게 하셨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들판의 풀잎이나 새들 혹은 꽃들보다 우리 가난한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각별한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이 그들을 사랑하고 보호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또 다른 부드러운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느님 스스로 가난한 사람들을 아버지로서 걱정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인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굶게 되는 상황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믿으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시고, 도와주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족함 가운데서, 주님께 필요함을 청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수도원에 입회하고 신학원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옷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바지 하나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바지를 청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아서, 저는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바지 하나가 필요합니다.’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저는 간절했습니다. 기도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형제가 바자회에 갔다가 바지를 사왔습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그냥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 바지는 좋은 바지였고, 아주 마음에 드는 바지였습니다. 제가 느낀 점은 넉넉할 때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부족할 때, 주님을 찾게 됨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유하고 넉넉한 가운데,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주님을 찾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신 이유입니다. 부유하면, 내 재산으로 다 해결할 수 있기에, 하느님 섭리에 기댈 부분이 없습니다. 오직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의 마음에는 하느님의 자리가 없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삶의 조건이 힘들기에, 주님을 찾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하더라도, 하느님보다 재물에 탐욕이 많으면 구원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부유하더라도, 재물보다, 하느님을 찾는다면, 주님께서 구원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또한 부유한 이들은 재물로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하늘 나라의 보물을 쌓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단순합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이 말씀을 오늘은 행복과 불행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재물보다 하느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이 하느님께 있는지, 재물에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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