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9월 10일 /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제1독서 : 1코린 8,1ㄷ-7.11-13 / 복음 : 루카 6,27-38
얼마 전에 용서에 관한 복음이었는데, 금새 또 용서입니다. 그만큼 교회에서 용서에 대한 주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27)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권고하신 말씀 중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용서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점점이고, 우리는 그 완성을 향해 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셨지만, 나에게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화, 미움, 분노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나의 고통스러운 감정 속에서 힘들게 지내게 됩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알면, 용서를 결심하게 됩니다. 오늘은 용서해야 하는 이유와 용서 과정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용서하는 이유에 대해, 신부님과 자매님의 가상의 대화 안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신부님, 저는 도저히 용서를 못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요?”
“아무리 용서를 하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많이 힘이 드시겠군요.”
“용서를 하려고 별짓을 다 해보았는데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니 어떡하면 좋을까요?” “자매님은 누구를 위해서 용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주님요. 주님이 제 죄를 다 용서를 해주셨으니 저도 용서를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알겠는데, 도무지 안되네요.”
“물론 주님이 용서하라고 말씀을 하신 것도 있지만, 사실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가요?”
“생각해보세요. 용서를 하지 못하는 동안에 자매님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요?”
“책을 볼 수 있나요, 잠을 잘 잘 수 있나요, 일을 할 수가 있나요? 또 용서하지 못하면 건강이 나빠지는 사람이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인가요?”
“하긴 그렇네요~ 신부님. 그렇지만 그래도 용서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을 어떡하지요?”
“어떡하긴요, 그렇게 살다 죽어서 원귀가 되는 길 밖에는 없지요. 나 자신을 위해서 용서를 하고 내 인생을 사느냐 아니면 용서하지 못하고 한을 품은 얼굴로 사느냐 하는 것은 자매님 선택이지요.” (홍성남, “용서가 안 되네요“, 평화신문, 2006.06.18.)
우리가 예수님을 뵈러 가는 과정에서,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용서의 이유를 보았고, 그러면 용서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보겠습니다. 안톤 룰릭이라는 알바니아 예수회 신부님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용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부님은 알바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은 신부님이 사제서품을 받은 직후,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공산독재치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종교탄압이 시행되었고, 신부님의 동료 예수회 사제들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부님께 산채로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혀, 신부님의 팔을 벌리고 그분과 함께 있도록 하는 희생을 원하셨습니다. 신부님의 사제적 희생제사는 사제로서의 전 삶을 조롱과, 배척과, 고문과, 감옥살이에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서품을 받은 해 12월 19일, 공산정권은 신부님이 정부에 반대선동을 한다는 구실로 체포한 후 17년간은 감옥에, 그 후 다음 17년간은 노동수용소로 보냈습니다.
신부님의 첫 번째 감옥은 아주 추운 외딴 산골마을의 한 작은 화장실이었습니다. 9개월간, 신부님은 누울 수도, 다리를 펼 수도 없는, 그 비좁고 더러운 곳에서, 그것도 강제로 인분 위에 앉아있어야만 했습니다. 서품을 받은 바로 그 해, 성탄절 밤에 그들은 신부님을 감옥의 1층에 있는 다른 화장실로 끌고 가서 옷을 벗기고 밧줄에 묶어 천장에다 발가락이 겨우 바닥에 닿을 듯 말듯하게 매달았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혹독한 냉기가 전신을 휘감았고 그것이 신부님의 가슴까지 차 올라왔을 때, 심장은 곧 멈출 것만 같았습니다. 갑자기, 너무나 엄청난 절망감으로 신부님은 크게 소리를 내고 울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을 심문하던 사람이 달려와 밧줄을 잘라 신부님을 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날 밤, 그 더럽고 혹독한 곳에서 신부님은 참으로 예수님의 강생과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신부님은 그 고통 안에서 바로 신부님과 함께 신부님 안에서 힘을 주시는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는 너무도 강하게 신부님을 지탱해 주셨기 때문에 신부님은 그 고통 중에서도 위로를 느꼈고, 심지어 마음 깊이 신비로운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사제로서의 신부님의 삶의 거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버린 그 고문자들에게 신부님은 어떤 미움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1989년, 신부님이 79세 되던 해, 처음으로 감옥에서 석방되었는데 길거리에서 우연히 신부님을 고문하던 사람 중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곧장 그에게로 다가가 그를 진심으로 껴안았습니다.
신부님은 고통 가운데, 예수님을 느낄 수 있었기에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 속에 예수님의 용서가 있었기에, 용서가 가능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가 가능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못박은 자들을 용서하시려고,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예수님께서도 ‘저들을 용서합니다.’ 하지 않으시고, 하느님 아버지께 도움을 청하신 것입니다. 용서는 결국 우리 힘으로 할 수 없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김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성적, 신앙적으로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용서의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마르틴 파도바니의 『상처입은 관계의 치유』 책의 내용입니다. 첫 번째로, 이성적(의지적)과정입니다. 그동안 미운 사람에 대한 화 때문에, 용서하지 못했지만, 내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용서할 것을 결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감정적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용서하고 용서받는 행위에 따라오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직면하고, 그 감정을 통해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용서의 과정으로 미운 사람을 위해 매일 화살기도를 바칩니다. ‘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고 그 사람을 보면, 화살 기도를 바칩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조금씩, 용서의 은총이 겨자씨처럼 내려옵니다. 기도의 결과는 효과적이어서, 미운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영적 과정입니다. 영적 과정은 상처와 분노를 떨쳐 내고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해 주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오늘은 용서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물으십니다. “건강해 지고 싶으냐?”(요한 5,6)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용서할 수 있는 기도를 알려주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 어렵지만, 용서하지 못하는 우리는 하느님께 미운 사람을 용서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용서의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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