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천당을 사는 돈-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천당을 사는 돈”
9월 25일 /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제1독서 : 코헬 3,1-11 / 복음 : 루카 9,18-22
오늘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대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구원자의 모습은 예수님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메시아를 로마인들을 추방해 주고, 율법을 안전하게 지키게 해 주고, 원수로부터 하느님의 백성을 해방시켜 줄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다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루카 9,20) 질문하십니다.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 9,20)라고 고백합니다. 이 의미는 예수님께서 ‘기름 부음 받은 이’라는 의미이고, 신적 사명을 수행하는 구원자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알고 구원 받으면 좋을 텐데,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핵심은 예수님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를 보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수난 예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3차례 예고하셨습니다. 많은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부활할 것이다. 예수님의 신원은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원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써, 우리의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적당히 참을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받으시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쇠가 박힌 채찍으로 매질 당하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 박히셨고,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온전히 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마음 속으로 그리며,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어 주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순교자 이도기 바오로는 고통을 천당을 사는 돈이라고 고백하며,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1797년 박해가 일어나자, 붙잡혀서 많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했습니다. 장터에서 외인들이 조소 · 야유 · 침 뱉음 · 돌팔매질을 했는데도, 그는 희희낙락했습니다. 오히려 “천주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였으니 영광”이라며 관장에게 감사하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이도기는 굶주림, 혹독한 고문과 상처로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 같이 주님의 십자가 수난에 동참함을 감사하며 기도를 드리니 그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이 보였습니다. 함께 수감되었던 교우가 고문을 두려워하며 심약해지자, 그는 “난들 왜 고문이 두렵지 않겠나? 그러나 어떻게 천당을 헐값으로 살 수 있겠나? 고통은 천당을 사는 돈이라네!”라고 교우를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옥사장은 슬쩍 옥문을 열어 두어 도망가기를 바라지만 눈치 없는 그는 감옥을 집처럼 여겼습니다.
어느 날 부인이 어렵게 술과 고기를 마련하여 와서 제대로 밥 구경을 못한 그에게 들기를 권하였습니다. 그는 식욕이 돌았지만 입에 대지 않고, 부인에게 “주님께서 나를 십자가로 부르셨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술과 고기를 드셨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소.”라며, 마음을 정했으니,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는 엄동설한의 추위를 맨 몸으로 버티는 고통 속에서도 “천주께서 매로써 온몸을 덥혀주신다”며 신앙의 불로 녹였습니다. 그는 “성모님, 당신께 하례 하나이다.”라는 신앙 고백을 하며 인사 불성이 되었고, 그의 나이 55세 때 천상의 집으로 갑니다. 시신을 거두며 슬피 우는 부인에게 옥사장은 “슬퍼하지 마시오. 시신을 가득 둘러싸고 있는 광채를 보았소.”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도기 바오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고, 천국과 부활을 믿었기에, 온갖 고문을 이겨 받았습니다.(유은희, 이슬은 빛이 되어, 순교의 맥, 2008, 244-246)
오늘날 순교자들을 통해, 예수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고통을 예수님처럼 겪어내게 합니다. 모든 고통을 십자가에 처형되신 예수님의 고통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루카 9,20) 물어보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로서, 오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여주시고, 타볼산에서 거룩한 변모를 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 수난 받은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수난 죽음 부활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당신은 구세주이십니다.” 고백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나 너는 나를 믿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왜요? 저는 당신을 따르는데요?”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십자가가 없잖아.” 하십니다.(손용환, 맹신부, 가톨릭출판사, 2006, 132) 우리는 예수님께 오는 위안만을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고 갈 십자가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십자가 죽음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 각자의 십자가도 사랑으로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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