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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뒷모습에서 어머니가 떠올.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어머니가 떠올라
[사람 사는 이야기-양운기]![]() |
2012년 06월 11일 (월) 14:38:29 | 양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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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전쟁 통에 갔어요. 며칠 설사를 하는데 그 때는 콜레라인줄도 몰랐지요. 글쎄 두 살이었는데 어린애가 아빠를 보니까 눈을 감더군요. 옆집 어른들이 그 애는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눈을 감지 않았던 거라고 해요.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아요. 더 이상 살 것 같지 않았는데 딱 자기 아버지가 도착하고 나니 가는 거예요 글쎄. 그 때가 개성에 살 때예요. 그렇게 손도 써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어요.”
봄의 화사한 기운이 여름의 뜨거움에 밀려 자리를 내주는 어느 날 수도원에 팔순 가까운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수도원에서 대화한다는 것이 할머니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일 것이며 수도원의 분위기가 할머니에게는 무겁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잠깐 상담하고 싶어서 들렸다면서 저에게 주춤거리면서, 느린 속도로,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살펴가면서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만 할머니가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에 답을 해 드리면 될 일인데 할머니의 말씀은 좀처럼 본론으로 들어가질 않았습니다.
한국 전쟁 때 첫 아들을 그렇게 보내고 가슴속에 묻은 채 살아오신 할머니의 말씀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은 딴 나라로 가셨겠지만 시부모님을 북쪽에 두고 왔어요. 그 어른들이 좋은 곳에 가셨겠지요? 나는 막내딸이 먼저 천주교회에 다니기 시작해서 나도 천주교 다니기 시작했지만 시 부모님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좋은데 가셨을까요?”
저는 눈치를 챘습니다. 이산가족입니다. 가끔 이럴 때는 1년, 혹은 장기간의 미사를 봉헌하거나 혹은 고인의 영혼들을 달래는 방법을 묻는 경우가 있는데 이 할머니도 그런 사연으로 방문했음을 짐작하면서 차분히 듣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사람들이 우리를 많이 도와줬으니..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20대 시절, 젊은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듣는다는 것은 삶의 증언이며 동시에 살아있는 공부입니다. 이럴 때 호기심은 역사를 사실 그대로 알고 계신 것인지, 아니면 김일성이 얼굴에 뿔이 나있는 귀신같은 사람으로 알고 계신지가 매우 궁금해집니다. 공산당들이 밀고 내려오니까 남쪽으로 내려 왔다는 것은 할머니가 겪은 역사적 사실일 수 있으나 미국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희생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말씀 하실 때는 몹시 거슬렸습니다. 하긴 제가 어린 시절에 그렇게 배웠고 지금도 미국은 좋은 나라, 소련과 중공은 나쁜 나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찌 이 할머니의 생각과 다르다고 반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는 순간 전 바보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할머니에게 ‘미국이나 소련이나 나쁘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에 참여한 것이지 우리나라를 위해 전쟁을 한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을 하는 순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화가 계속 되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할머니께서 확신에 찬 태도로 힘주어 말하는 상황에서 다른 역사적 사실들이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남과 북의 분단 문제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일본에서의 해방이 자주 독립 국가로 거듭나지 못한 이유가 남과 북을 군사적으로 나누어 점령한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는 것은 남북 통일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 미국이 우리나라의 남쪽만이라도 점령하려는 의도로 북위 38선을 분계선으로 잠정적으로 소련에 제안했다는 분통터지는 역사적 사실을 할머니에게 말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배경이 한국전쟁의 큰 씨앗이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는데도 말입니다.
“미국사람들이 우리를 많이 도와줬으니 그 어려운 시절을 보내게 되었어요. 그 때는 난리가 금방 끝나서 개성으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도 못 가고 있어요. 아이가 하나 태어나면 갈수 있으려나, 했는데 못 가고. 둘째가 태어나면 갈 수 있으려나, 했는데 그래도 못 가고. 항상 돌아갈 준비만 하다가 세월을 다 보내고 이제 영영 갈수 없게 되었어요.” 저는 할머니가 가진 무조건적 친미적 관점과 주장에 저는 어쩔 줄 모르고 허우적대면서 할머니의 파노라마를 들을 수밖에 없었고 인내를 가지고 자리를 지키는 일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영감은 몇 년 전에 갔는데 투석을 한 일 년 하다가 편안하게 갔어요. 일주일에 세 번을 병원에 투석하러 다녔어요. 그 때는 영감 성격이 고약해서 힘들어서 혼났는데 왜 혼자 갔는지? 가고 나니까 서운해요. 그래도 나를 굶기지는 않은 영감이었는데. 나도 여기저기 몸에 칼을 많이 댔는데, 내가 먼저 가도 되는데 영감이 먼저 가 버렸어요.” 우리 현대사의 질곡, 시대의 야만과 이념의 무자비함이 시소를 타는 것 같은 할머니의 삶을 할퀴고 지나간 흔적을 듣는 저의 감정은 분노와 억울함, 슬픔과 연민으로 바뀌면서 어느덧 할머니에게 동화되고 있었습니다.
위태로운 시절을 온몸으로 살아오신..
글이야 이렇게 짧게 쓸 수도 있고, 보는 관점과 각도, 평가는 약간 다를 수는 있으나 내용으로 보면 전쟁과 분단, 가족과의 이별, ‘빨리빨리’ 바쁘게 살아오면서 체험한 그만큼의 경제성장, 그리고 그 경제성장의 뒤안길에서 다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경제, 황급히 찾아온 고령과 더불어 남은 자의 외로움입니다. 할머니가 아무리 고인들의 혼을 달래는 일을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저는 삶을 정리해 나가는 한 노인의 외로움을 눈치 채 버린지라 할머니와의 대화를 중단하고 얼른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제 경험으로 비춰볼 때 이럴 때는 저의 계획을 포기하고 그냥 주저 않아 편히 할머니의 말씀을 듣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 할머니의 기막힌 사연을 어떻게 위로 할 수 있을까? 곱게 미소 짓고 있지만 그 미소를 만들기까지의 불안, 그리고 외로움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저는 도무지 이 할머니를 위로할 힘이 없었습니다. 외로움을 감추려는 몸부림, 미래에 대한 불안함, 조바심, 초조함, 앞서간 가족들에 대한 걱정, 할머니의 머릿속은 얼마나 복잡할까? 아니면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계신 걸까? 위태로운 시절을 온몸으로 살아오신 할머니의 겉만 보면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음식은 잘 드시나요? 소화는 잘 하시지요? 약 드시는 것은 없으세요?” 어느덧 제가 묻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신이 나서 답변을 하십니다.
“내 몸에 칼을 많이 댔어요. 가슴이 모두 없어요. 많이 아팠을 때 영감이 나에게 들어간 돈을 세우면 몇 미터는 된다고 하면서 놀릴 때는 막 소리치고 했는데, 글쎄 영감이 먼저 가버리는 거예요. 영감은 천주교에 나가지 않았는데 좋은 데는 갈까요? 요즘은 레지오도 나가고 새벽에 성당에 다니는 일이 제일 좋아요. 손주가 놀러 왔을 때 새벽에 촛불 키고 성모 어머니께 기도 하는 걸 보고는 할머니 혼자서 중얼거린다고 미쳤다고 해요. 요즘은 불안해요. 먼저간 식구들이 좋은데 가지 않았다면 어쩌죠?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시고 나서 시신을 기증한다고 했어요. 내가 죽고 나면 누군지 모르지만 와서 내 몸뚱이를 가져간다고 했어요. 그러면 좋은데 가게 되는 거지요?”
“본당신부님께 찾아가서 한 달 미사를 했어요. 우리 식구들이 좋은데 가질 못한 것 같아서 불안해서 미사하고 혼을 달랬지요.” 다시 어느 수도원을 찾아가서 한 달, 어느 수녀원을 찾아가서 두 달, 어느 본당에 가서 몇 개월 등,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미사 봉헌의 횟수는 제가 말을 질문하면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 증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먼저 떠난 가족들을 위한 할머니의 정성은 참으로 극진하고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자신이 죽고 나면 누가 그 혼들을 달래줄 사람이 없으므로 좋은 곳으로 가게 하려면 계속 미사를 봉헌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그렇게 여러 번 미사를 봉헌했으면 이제 그만 하셔도 됩니다. 영감님과 시부모님, 그리고 아들은 이미 좋은데 가신 것 같아요. 할머니가 그동안 열심히 살았는데 그 분들은 이미 편안하게 계실 테니까 할머니가 이제부터 건강하게 살고 약도 잘 잡수시면서 혼자 사시니까 불나지 않게 촛불 조심하고 기도하면서 살면 다 잘 될 거예요. 그리고 미사는 그렇게 여러 번 하지 않아도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시고 성모님도 도와주실 겁니다.” 제가 무슨 배짱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할머니는 “여기저기에 가도 미사 해 준다고 말은 했지 이제는 미사 그만해도 된다고 하지 않던데요? 정말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할머니 이제 그분들은 모두 천당에 갔을 겁니다. 그러니 그 봉투는 할머니 약값으로 쓰시고, 맛있는 것 잡수시고 손주들에게도 용돈도 주세요. 동네 할머니들하고 재미있게 지내실 때 맛있는 것도 한번 사 주시고 인심도 쓰시면 좋을 겁니다. 그러면 할머니도 분명히 좋은데 가시게 될 겁니다. 수도원에서도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게 되어있으니까 할머니는 건강만 하시면 최고입니다.”
할머니는 잘 믿기가 어려운지 봉투를 들고 머뭇거리기만 합니다. 얼른 봉투를 집어 들고 할머니 가방 속으로 넣어드렸습니다. 그리고는 할머니에게 다시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현관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제가 정말 제대로 할일을 한 것일까요? 할머니의 뜻을 받들어 매일 그 가족들을 위한 미사를 했어야 하는 것인가요? 다만 저는 할머니가 수도원을 나서시면서 하신 말씀으로 어렴풋이 짐작 합니다. “몇 년 만에 하고 싶은 말 다 했네요. 가슴이 다 시원하게 뚫린 것 같네요” 할머니의 이 말씀은 제가 크게 잘못한 것이 아님을 확신케 합니다.
인생살이는 아침 풀끝의 이슬과 같고..
예수님도 하늘나라의 보물을 차지하라고 하셨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을 무수히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의 것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부처님도 인생살이를 두고 아침 풀끝의 이슬과 같고 저녁연기와 허공에 날아가는 것이며 물위에 둥둥 떠 있는 거품처럼 실체가 없고 먼 산의 아지랑이처럼 한낮 일장춘몽 같다고 했습니다. 인간 몸뚱이 하나가 무상하고 허무한 것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처님은 과연, 인생이 무상하고 허무하니 쓸 떼 없는 것이라고, 세상의 것이 모두 환영(幻影) 이라고 했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기에 자비를 베풀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기에 살아있을 때 이웃들과 함께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설파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도원을 나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홀로 되신 어머님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와 한참 대화할 때는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그 할머니는 영락없는 저의 어머니였습니다. 이 무슨 황당한 연상이란 말입니까? 조심스럽게 수도원을 나서는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어머니가 떠오르다니요? 저녁 내내 어머니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쩌다 집을 찾으면 “출가한 수도자가 집에 자주 드나들면 뿌리를 못 내린다. 자주 오지 말라”고 하시는 어머니, “내가죽었다는 연락을 받으면 그때는 오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드디어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노인이 되고나서 몇 년 전부터 전화 한 번 하지 않는다고 투덜대며 서운해 하셨다는 어머니, 10여 년 전, 집을 찾았을 때 새벽에 아버지 사진과 대화하며 흐느끼는 모습을 저에게 들켰던 어머니, 이제 혼자되신지 30여년이 되어 가는데 나는 왜 그때 57세에 혼자되신 어머니에게 재혼을 권유하지 않았던가? 왜 그 외로움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했을까? 권유했다면 어머니는 거절했을까? 왜 말을 해보지도 않았단 말인가? 못난 불효자의 소리 없는 속울음입니다.
문득 승려 시인 신천희가 쓴 ‘외상값’이라는 한편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 당신의 뱃속에 열 달 동안 세 들어 살고도 한 달 치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몇 년씩이나 받아먹은 따뜻한 우유 값도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저승까지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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