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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택,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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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총선과 그리스도인의 선택-양운기 수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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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성북 갑 지역구입니다. 이번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는 4명입니다. 2번 유승희(민주당), 6번 강승규(국민생각), 7번 최덕환(미래연합), 8번 정태근(무소속)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1번은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변경)이었는데 이번에는 1번이 없습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번 무소속 정태근 후보가 한나라당 소속이었다가 얼마 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새누리당에서 무 공천, 즉 공천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정태근이 다시 복당하기를 기대하면서 무 공천 지역으로 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1번이 없고 민주당 후보 2번 유승희가 맨 앞에 배치된 것입니다. 정태근 후보는 현역 국회의원이지만 성북갑 지역에 한나라당 후보로 세 번 출마하여 18대에 처음으로 당선된 사람입니다. 그는 과연 선택을 했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무조건 1번을 선택했던 공동체의 한 형제는 그간 정태근을 선택했던 셈인데 이번에는 1번이 없어서 고민입니다. 이번에도 1번을 선택하려니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난감한 이 형제는 정태근이 어떻게 한나라당을 탈당했는지도 모르거니와 정태근이 한나라당 후보로 세 번이나 출마한 것도 모릅니다. 선거 때 마다 맨 앞에 1번에만 도장을 꾹 눌러왔는데 이번에는 선거 벽보에 2번 인물이 맨 앞에 배치되어 있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왜 후보를 내 보내지 않았는지는 더더욱 알 리가 없습니다. 1번이 없으니 투표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후보자의 자질이나, 소속 정당의 정책, 후보자의 현실 진단 능력 등을 보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 1번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고민이 깊은 나머지 투표를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동안 정태근을 선택해 왔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형제는 지금까지 정태근을 선택한 것인가요? 1번을 선택한 것인가요?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인가요? 아니면 지금까지 그는 과연 선택을 했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서 그 형제의 선택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물음이 신앙인에게는 매우 본질적이며 실제적 문제입니다. 지금부터 이 본질적 문제를 두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유권자들에게 감히 제 생각을 나눕니다. 하느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후보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 결과가 우리 생활을 전면적으로 바꿔 놓을 때가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때로는 우리 삶의 방향을 전혀 다른 곳으로 안내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선택은 엄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의 선택기준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약자를 보살피는 사람이며, 권력이 민간인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사찰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우리는 불법으로 민간인을 사찰하고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세력들을 유권자의 권리로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대통령과 같은 정당 소속이면서도 자신들은 민간인 사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발뺌하는 정당은 우리가 말하는 하느님 나라의 정의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당에 소속된 후보를 선출한다는 것은 민간인에 대한 사찰, 감시, 통제를 인정하는 것이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세상에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모른 척 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는 없으며 나아가 그 부정에 가담한 사람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약자들이 피해보는 정책을 세우는 사람을 결코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약자들을 아끼고 품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그런 정책을 표방하는 정당을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평화를 지키기 보다는 국가 간의 긴장을 유발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후보나 그런 정당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선택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더욱 가난해져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탈락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후보와 그런 주장을 하는 정당 소속의 후보를 신앙인은 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하느님께서는 끝장 날 때 까지 무한 경쟁으로 사람이 죽음으로 내 몰리는 무자비한 현실 자본주의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실 듯 합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지키지 않고 주민들의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찬성하는 후보나 정당은 그리스도인의 가치와는 정 반대이므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구속하고, 방송에 출연하여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한 연예인의 방송출연을 금지시키는 정부와 그 정부를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는 적극 반대해야 합니다. 죽지도 않은 4대강을 살리겠다고 주장하며 국민에게 거짓말을 반복한 정당과 그 당에 소속된 후보들을 지지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창조 질서를 무시하고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을 강을 살리는 일이라고 거짓말했던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다면 그런 사람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에 대하여 말없이 동조한 사람들이 후보로 출마했다면 그 또한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피조물과 자신을 동일존재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공동선’을 위한 정치적 선택 분명히 우리가 받은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실재화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 때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생명을 입은 새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입었다는 것, 그것은 매일 새 세상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생활의 순간, 순간의 선택을 하느님의 뜻에 맞추겠다는 다짐입니다. 이 다짐은 나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런 태도는 사회의 불의한 구조를 변화 시키려는 노력이며 이런 실천과 사회적 참여가 반 복음적 질서를 복음적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내 자신의 편안함, 내 개인의 이익을 위한 선택일 수 없습니다. 나의 선택은 나에게 더러 손해가 되어도 전체 공동체의 선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야 합니다. 나의 선택이, 나의 편안함에는 도움이 되고 남을 해치고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거나 하느님 창조 질서를 파괴한다면 그것은 신앙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창조질서는 그 질서를 부정하는 어떤 문명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그 질서를 보존하고 더욱 가꾸는 한에서만 용납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현재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건설하면서 파괴되는 자연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므로 4대강 건설을 찬성했던 후보들과 제주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후보들은 분명히 하느님 창조질서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며 이런 후보들을 우리는 국민의 대변자로 선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권력을 위한 소름 끼치는 ‘민간인사찰’ 분명히 기억해야 할일이 있습니다. 1990년 5월 감사원 이문옥 감사관이 ‘재벌 로비로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감사 중단’ 사실을 고발한 바 있습니다.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는 윤석양 이병은 보안사의 컴퓨터 디스크를 들고 탈출하여 보안사가 민간인을 사찰했다고 양심선언을 했습니다. 이 사찰 문건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윤공희 대주교의 대인관계가 낱낱이 기록되어있었고 가족사항, 해외여행등의 9개 항목으로 기록되어 관리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심지어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과 어디에서 만났다는 것 까지 자세히 기록되어있어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개신교 지도자들, 반대 세력들의 자택 담장의 높이까지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아가 비상탈출구, 도주로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성직자들이 어디로 도주를 한단 말입니까? 이러한 만행은 이후에 <모비딕>이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1992년에는 이지문 중위가 군대 내 부정선거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것뿐 이겠습니까? 철권통치로 유명했던 박정희 정권에서는 더욱더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가 억압되어 있었음을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자신을 반대하면 어느 날 어떻게 세상에서 사라지는지 모르는 비일비재 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시절임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군사 권력의 폭력과 횡포를 현재의 청와대 권력이 그대로 전수 받았는지 지금 현재 우리 주변을 서성거리며 일상을 감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이 경제 발전에 공로가 크다고 합니다. 그러나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자기 맘대로 주무르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면서 국가를 통치했다면 박정희가 아닌 누구라도 그 정도는 충분히 할 것 같습니다. 반대자를 인정하고 민주적 가치를 받아들이며 국가를 통치했을 때 그런 통치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고 억압하면서 공로를 세운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인간을 위한 경제라고 하면서 인간을 죽인다면 그것은 인간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 권력 자신을 위한, 권력의 야망을 위한 경제 발전인 것입니다. 지금 그런 독재 권력의 딸이 다시 국가 권력을 손아귀에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민간인 사찰의 망령이 되 살아날지 모를 일입니다. 그는 청와대가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한 것을 모른 척 눈감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박정희도 그랬기 때문에 청와대를 탓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민간인 감시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앞으로 어떤 모습의 권력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공포가 엄습합니다. 이처럼 권력의 뒷모습은 폭력과 술수, 불의와 거짓 등을 동원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런 일이 민주주의사회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이런 야만의 사회가 지금도 계속되어야 되겠습니까? 이런 소름끼치는 일이 계속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실제 일어났습니다. 2012년 4월 청와대가 그동안 수많은 민간인을 사찰하였음이 드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치 세력들이 과연 우리 신앙인의 기준으로 볼 때 신앙인의 삶의 가치로 볼 때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자명합니다. 신앙인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런 야만의 사회를 그냥 방치한다면 언젠가 권력의 칼은 보통사람, 평범한 우리들의 목을 노리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아니 이미 와 있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우리 선조 순교자들처럼 우리 신앙인의 자유마저도 지금 감시당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권력은 늘 그렇게 자유와 평화와 인권을 억누르며 존재하고 세력을 확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4월 11일, 그날은 선택의 날이며 축제의 날이며 파스카의 신비를 체험하는 날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더 이상 백성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억누르는 권력에는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이 잘못된다면 우리는 마침표를 영영 찍을 수 없으며 공포의 권력, 악마의 권력아래서 이웃과 내 형제 자매를 감시해야하는 소름끼치는 상태로 노예처럼 살아가며 신음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함에 비추어 볼 때, 하느님을 닮은 인간 본질에 비추어 볼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볼 때 결코 그럴 수 없는 일입니다. 2012, 4, 11일, 19대 국회의원 선거는 부활축제 기간에 있습니다. 진정으로부활 축제가 될 수 있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닮는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따름으로서 매일 매일 하느님 나라를 향하고 새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새 세상을 향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순간, 순간이 부활의 축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고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그리스도인의 선택은 자명합니다. 이런 선택은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자녀들의 몫입니다. 유권자이면서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선택은 이처럼 엄중한 것입니다. 4월 11일, 그날은 선택의 날이며 축제의 날이며 파스카의 신비를 체험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세례를 다시 확인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는 날입니다. 신앙인의 소명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살아있으며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음을 믿는 날이며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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