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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귀찮아서 수도자가 된 게 아닌데
혼이 귀찮아서 수도자가 된 게 아닌데 | ||||
[사람 사는 이야기-양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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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길을 묻습니다. 우리 동네 구석에 자리한 사찰 중 길상사가 있습니다. 법정 스님 덕에 길상사가 유명해지면서 봄나들이에 나선 사람들이 수도원 앞에서 길상사 가는 길을 묻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방향을 제대로 찾은 사람도 있고 길을 지나쳐 되돌아와 묻는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한참을 돌았다고 투덜대고 짜증을 내며 묻기도 합니다. 며칠 전 수도원 앞에서 한 중년 여성이 길을 물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마지막으로 길상사를 가보고 싶어 하셔서 길을 찾아 나섰다는 것입니다. 승용차 뒷좌석에는 몸이 불편한 듯한 노인 내외가 앉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길을 찾아 나섰다는 짧은 외마디가 저의 기억을 자극했고 문득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1996년 가을 어느 날, 뉴질랜드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너, 내 동창 양운기 맞지?” 초등학교 동창 친구는 제가 쓴 어떤 글을 뉴질랜드 성당에서 봤다며 30여 년 만에 저를 찾았습니다. 당시 저는 어떤 매체에 글을 연재하고 있었고 그는 글에 적힌 제 이름을 보고 서울로 수소문하여 제가 있는 수도원을 찾아냈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해냈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빠른 속도로 어린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눈과 키가 크고 운동을 잘하는 잘 생긴 친구의 아버지는 저의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었고, 저의 아버지는 친구 아버지의 중학 시절 담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친구 아버지의 제자이며 친구의 아버지는 제 아버지의 제자입니다. 바로 옆 동네에 살면서 아버지들은 교직에 몸담았고 친구의 형제들과 저의 형제들도 상대방 아버지와 사제 관계로 마구 얽혀 있었던 것입니다. 의아한 것은 30년이 지나면 제아무리 동창이라 해도 서먹서먹하고 찾는 경우가 드문데, 확신하듯 저를 찾은 것과 대화의 내용이 여운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첫서원식, 피정의집 복자사랑, 2008 ⓒ 김선규 수사 |
결혼이 귀찮아서 수도자가 된 게 아닌데…
“야, 네가 수사가 됐구나. 정말 잘 했다. 난 여기 이민 왔는데 생각대로 되는 것이 없네. 혼자 사는 것이 속편하고 얼마나 좋냐? 부럽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30여 년 만에 나눈 대화가 주로 이런 내용이어서 저로서도 약간 머쓱하고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대화를 계속 했습니다.
저는 친구에 대한 정보도 없고 더구나 이민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으니 특별하게 할 말도 없어서 멈칫멈칫 긴 세월의 간극을 메우느라 대화 적응이 어려웠고 약간의 찝찝한 뒷맛을 남긴 채 대화는 끝났으니 무엇인가 잔뜩 궁금해진, 그리고 시원스럽지 않은 전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결혼이 귀찮아서 수도자가 된 게 아닌데 사람들이 ‘결혼해봐야 별 거 아니야. 무자식이 상팔자인데 속편하게 잘했다’는 등의 말을 할 때마다 무엇인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결혼이 싫어서, 혹은 혼자 사는 것이 편할 것 같아서 수도생활을 하는 것만은 결코 아닌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런 관점으로 수도생활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 같아서 휑한 마음일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제가 수도자로서 깊은 삶의 향기가 없다는 증거일 수 있으며, 그래서 수도자가 결혼이 싫어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딱히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수도자는 결혼이나 가정이 귀찮은 사람이기보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려는 이유로 수도생활을 하는 것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신앙고백을 표현한 것이 수도생활인데 말이지요.
그런데 수도자가 그 증거의 삶을 잘 못 해내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하느님을 향한 사랑도 시원찮아 보여서 결혼이 귀찮거나 혹은 혼자 사는 것이 편해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는 우선은 수도자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고, 제가 모든 수도자의 대표가 아니지만 30여 년 만이라 하더라도 친구로부터 그런 말을 직접 들은 저는 그만큼 저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그날의 친구 전화는 무척 반갑고 기뻐야 할 일임에도 저는 한참 착잡한 심정으로 혼자 풀이 죽어 며칠을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제 삶의 본질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참담한 심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저로 하여금 그 친구를 곰곰이 생각하고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를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며 동시에 제 삶의 본질과 현상 간의 간극을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수도자의 신앙고백에 따른 존재양식은 보이지 않고 결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 현상만 보이는 이 현실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영적 힘을 지니지 못함이 또한 불만스럽고 한 수도자의 왜소함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한 번 주시지 않을까?”
세월이 한참 흘러 지난 여름 저는 40여 년만에 초등학교 동창들이 모인 자리에 우연히 참석하게 됐고 뉴질랜드에 산다던 그 친구를 그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나와 있어서 얼굴이 변해버린 서로를 확인하느라 분주한 중에 그 친구의 옆에 앉아서 뉴질랜드에서 전화했던 기억을 무용담처럼 수다로 털어냈습니다.
그런데 잠시 다른 친구들에게 한눈파는 사이 그는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다른 친구 말에 따르면 그는 한국에 들어온지 몇 년 됐으며 몸이 아파 오래 있지 못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모임이 끝나고 헤어질 때에야 친구의 병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얼마 후 친구가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방문했을 때 그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고 그에 따른 통증과 심리적 불안 상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운동선수 출신이어서 자신이 투병 중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친구들은 거의 모르고 있었으며 치료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 외로움이 친구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병중에 있는 사람에게 위로를 잘 못하고 그 고통을 잘 모릅니다. 제가 크게 아팠던 적이 없는 게 그 이유지만 감성적 성향이 아닌 탓에 애써 노력해도 잘 안 되고 남들도 제가 감성적 태도를 보이면 어색해하여 저도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의 병실에서는 이런 저의 단점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야, 운기야, 너 수사잖아? 하느님이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한 번 주시지 않을까? 내가 많은 잘못을 했지만 그래도 한번은 기회를 주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죽으면 부활은 하나? 예수님은 영혼과 육신이 결합하여 새벽녘에 부활했다고 성가도 부르는데? 그건 사실이니까 성경에도 나왔겠지? 그리고 사도신경에도 사흘 만에 부활한 것으로 나오잖아? 내가 살아온 길이 분홍빛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노력 많이 했는데 하느님이 정말 마지막 기회를 안 주실까? 내가 지금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길을 가는 건가? 우리가 죽으면 나중에 다 만나는 거지?”
두 시간쯤 흘렀을 때도 비슷한 질문은 반복됐고 저는 친구의 질문에 거의 답하지 못했습니다. 위로할 줄 모르는 저의 성향이 드러날 시간도 없이 질문을 하기 때문입니다. 위로하지 않아도 되는 다행이지만 답변을 못했으니 저는 무능한 죄인처럼 무겁고 긴장된 분위기를 견디면서 친구가 살아온 파란만장한 지난날을 듣기만 하고 해방이라도 된 듯 병실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 친구는 병원 문을 나서는 제가 도망치는 기분이었음을 당연히 눈치채지 못했고 오히려 방문에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부활은, 승천은 있는 것인가? 그 친구의 기대처럼 영혼과 육신이 결합하여 부활하는 것인가? 그리고 승천으로 당연히 이어지는가? 내가 믿는 부활을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두 시간 넘게 계속 듣기만 했습니다. 제가 아무런 답변도 못하자 친구는 더 불안해 했으며 그 때 저는 ‘아, 잘못 왔구나. 이 친구를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왔구나. 내가 잘못한 것이다.’ 하며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병실을 나서는 제게 “네가 좀 하느님께 부탁해봐라.” 하는 친구의 말을 듣고는 그 말에는 제가 분명히 “그래 볼게. 내가 좀처럼 하느님께 부탁을 하지 않으니 아마 하느님께서 감격하셔서 들어줄지도 몰라” 하고 답변한 것이 제 말의 전부였습니다. 병원 문을 나서는데 여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온 대지를 우울한 분위기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수도원에 돌아와 흐리고 궂은 날에는 그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부탁하겠다는 약속을 한 생각이 떠올라 성당에서 몇 번 조배하는 시간도 갖게 됐으니 저로서는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가 생각날 때면 일부러 친구를 위해 성당에 앉아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으니 시간이 지나며 친구와의 대화는 제게 숙제를 안겨줬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느님이 마지막 기회는 주지 않을까?” 하고 말하던 친구의 간절함은 제 가슴 깊이 각인돼 있습니다.
‘마지막’이란 무엇인가? 신앙인에게 마지막은 무슨 의미인가? 친구는 정말 마지막 길을 간 것인가? 또한 나에게 마지막은 어떤 것일까?
아들이 머물던 자리, 남편이 머물던 자리, 이제 그곳은 텅 비어버린 것일까요?
12월 중순, 그날은 여름에 친구의 병실을 나오던 날처럼 날씨가 몹시 흐렸습니다. 그래서인지 문득 친구가 어떻게 투병하는지, 항암치료에 성공해 재기의 가능성을 찾았는지, 하느님은 그의 간절함을 받아들여 마지막 기회를 주었는지,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서울 날씨 참 나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가족으로부터 금방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신가요? 아직 연락을 못 받으셨는가 보군요? 어제 임종하셨습니다.”
아! 이렇게 날짜를 잘 맞추는 기술이 제게 있는 줄 몰랐습니다. 친구들도 제가 수도원에 산다고 잘 연락하지 않고, 하더라도 서로 미루었는지 제가 먼저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면 저는 그가 떠난 것을 모를 뻔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저 언덕 너머로 훨훨 떠나버렸습니다. 저에게 영영 답을 듣지 못한 채 말입니다. 서둘러 영안실을 찾고 이튿날 매장하는 장소까지 갔습니다. 친구의 부친, 그러니까 먼저 가신 저의 담임선생님 옆에 자리를 정했다기에 더욱 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누웠습니다. 친구의 모친이 통곡을 합니다. 남편과 아들을 앞세운 서러운 노파의 가는 통곡 소리는 앞산 너머 하늘까지 사무치는 듯 했습니다. 가슴을 후벼 파며 “이 자식아, 이 자식아” 흐느끼는 모친의 심정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아들이 머물던 자리, 남편이 머물던 자리, 알 수 없는 그 깊이와 넓이, 이제 그곳은 텅 비어버린 것일까요? 하얀 눈발이 세차게 내리는 모습을 등지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하느님은 친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는가? 주셨다면 그 마지막 기회가 친구가 원하는 것과 같은 것인가? 친구가 말하는 마지막 기회와 하느님 입장에서의 마지막 기회는 같은 의미인가? 참 헤아릴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친구가 믿는 ‘부활’이 내 믿음과 다를지라도 반대하지 않는 것 뿐…
그가 준 숙제를 저는 풀어야 합니다. 저는 분명히 삶이란 덧없이 지나가는 일장춘몽은 아니라고 믿고, 또한 부활은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친구가 말하는 것처럼 나중에 친구를 만난다는 부활은 믿지 않습니다.
부활을 기대함이 겸허하게 자신의 몸을 낮추고 자신을 맡기는 태도를 의미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명예롭고 품위있는 일이겠으나, 사람들이 부활을 두고 다른 새로운 형태의 만남을 꿈꾼다거나 어디에 다시 모인다거나 하는 생각을 부추긴다면 저는 그것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친구가 “우리 다음에 만나겠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답할 수 없는 노릇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의 깊이, 신비의 영역을 어떻게 부활이며 승천이란 단어로 모두 표현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친구가 믿는 부활이 내가 믿는 부활과 다를지라도 반대하지 않는 것 뿐입니다. 다만 내 인생이 영화나 소설이라면 한번 갔던 길을 다시 갈 수 있지만 사람의 인생 길은 그와 달라 되돌아올 수 없는 길, 단 한 번의 길임을 믿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찮은 인간이지만 부활과 승천에 대한 물음은 영원한 것이고 어떤 틀에 묶을 수 없을 만큼 인간 사고의 영역에 가둘 수 없는 신비한 것으로 믿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또한 그것은 현실 안에서 추구해야 하며 현실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그 신비에 대한 목마름의 갈증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미 그는 부활을 살았던 것이 아닐까?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말하기를 인간은 여행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긴 여행 길을 떠나고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다만 이 인생길에서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부활은 있는가’를 물으며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 수 있는 어떤 분이 존재하고 있음을 믿고 나중에 친구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제 친구의 인생은 이미 자신의 길에 최선을 다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최선을 다했다면 비록 고통 중에 두려움을 안고 떠났으나 삶에서 부활을 체험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이미 그는 부활을 살았던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그는 하느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를 얻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는 인간의 본질적 삶, 인간의 길이 무엇인지 꾸준히 물으며 살았겠지요? 그의 믿음이 저의 믿음과 달랐더라도 말입니다.
봄비가 내립니다. 봄비는 누구의 눈물일까요? 지금쯤 친구와 그의 부친이 누워있는 양지바른 언덕에 여러 봄꽃들이 단장하고 있겠지요. 뒷동산에 할미꽃 한 송이 피었을까요? 낮은 모습의 민들레 한 뿌리가 아직 찬바람 피하며 고개를 내밀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것이 친구가 부활한 모습이 아닐까요?
그것을 두고 그 친구가 승천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저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아닐까요? 과연 친구의 신앙과 저의 신앙은 다른 것일까요? 제가 너무 엉뚱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
아! 이처럼 타는 갈증은 죄가 아니겠지요?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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