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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과 한국교회
‘아이폰’과 한국교회
심 상 태
이 글 제목을 대하고 저의 지인들 가운데에는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주위 분들이 마련해 준 휴대폰을 사용하기 시작한지 어느새 10여년 가량 되어오지만, 저는 전형적인 아날로그형 구세대 인물이라는 사실이 지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 유선 전화로 안부를 나누고 용건을 처리하는데 익숙한데 비해 휴대폰 사용은 아직까지도 생소하게 느껴져서 대체로 끄고 지내다가 필요시에 주변 권고에 따라 켜놓게 될 때에라도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통화를 하는데 그칠 뿐, 문자 메시지를 받고 문자 응답을 보낼 줄도 모른 채 부재중인 상대방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한 외국산 스마트폰이 정보산업 소위 IT 강국으로 알려진 국내 휴대폰 시장을 넘어 사회 전반에까지 파장을 미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되면서 교회와의 상관관계까지 생각하게 되었다니 이른바 휴대폰 문외한인 ‘폰맹’과 별반 다름없는 처지에서 살고 있는 저를 잘 아는 여러 지인들께서 의아하게 여기시더라도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겠습니다.
사과 표 로고의 ‘매킨토시 컴퓨터’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미국 애플사(Apple Inc.) 제품 ‘아이폰’(iPhone)은 2007년 6월에 출시되어 미국을 위시한 외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고급 휴대폰은 단순한 무선 통화뿐만 아니라 개인적이거나 사업상의 각종 업무를 무선 통신망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때문에 시판 즉시 도처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으며 판매되고 급기야 시장 풍토까지 바꾸어 놓을 정도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동안 단말기 제조업체와 이동 통신 서비스 등 산업체가 형성한 폐쇄적인 환경 때문에 한 이동통신사에 의해 작년 11월에야 비로소 출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국내산 무선 통신 기기들이 세계 일류 제품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되는 가운데 판매되어 온 국내 시장에서 아이폰의 판매는 일부 소수의 소비자 계층에게서만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던 사계 전문가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불과 2,3개월 만에 조기 구매자들에 의해 대단한 호평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면서 30만명에 이르는 수많은 개인 소비자들은 물론 유수의 기업체들이 신속한 업무 처리를 위하여 속속 대규모로 구입하는 사태가 벌어지기에 이른 것입니다. 급기야, 저 자신은, 이 아이폰이 앞으로 국내 휴대폰 시장 풍토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기류 자체까지 근본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국내 산업체들이 철옹성을 쌓다시피 굳건하게 형성한 폐쇄적 이동 통신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아이폰은 출시되기가 무섭게 선풍적 인기를 모으면서 무서운 기세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국내산 휴대폰 내지 스마트폰은 시장에서 기기 자체의 성능 면에서는 세계 정상급이라고 간주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소비자들의 기호나 필요를 수렴한 내용 콘텐츠 보유 차원에서 애플사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Steven P. Jobs)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녹아있는 ‘아이폰’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열세를 나타낸다는 평가가 국내 사계 전문가들에게서 일반적으로 개진되고 있습니다. 결정적 차이는 화질, 음질, 데이터 처리와 전송 속도 등등 기기 자체에 고정적으로 내장되어 있는 ‘하드웨어’(HW)가 아니라 사용자들이 기호와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SW)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국내산 휴대폰 기기들이, 저와 같은 국외자들에게는 경이적이라고 할만한 상당히 많은 기능을 탑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선 이동통신을 이용하여 작업을 수행하게 되는 경우에는 극히 제한된 콘텐츠에 한하여 그것도 상당한 고가의 유로로 이용할 수 있는데 비하여, 아이폰의 경우에는 온갖 생활 영역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소형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이른바 ‘어플리캐이션’(Application)을 무려 18만 9000여 종(2010년 2월 18일 현재: ⌜중앙일보⌟ 2010년 3월 2일 E1, E15면 참조)이나 보관하는 온라인 장터를 가리키는 ‘앱(App: Application 약자) 스토어(Store)’로부터 꺼내어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서 무료 내지 저렴한 가격으로 이동통신망을 자유로 활용할 수 있는 때문에 도저히 비교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국내 휴대폰 시장은 하드웨어 개발에 공을 들여 세계 첨단급 기능을 탑재한 단말기를 생산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제조업체들과 이동 통신사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들 산업체 그룹이 형성한 독과점 체제는 소비자들의 크고 작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업체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운용되는 환경을 구축하였습니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기호나 요청과 무관하게 업자들이 이미 형성해 놓은 환경에 적응하고 만족하는데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생산자들에게 철저히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폰은 휴대폰 단말기에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와 요청을 수용하는 가능성을 보유하는 가운데 십수만개의 소프트웨어를 무료 내지 극히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 곧 소비자 중심의 유통 구조로 획기적 전환을 도모한 것입니다. 아이폰에는, 소비자가 자신의 기호와 필요에 따라 다양한 소형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여백이 무료이거나 대단히 저렴한 가격으로 거의 무제한 제공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문인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뿐만 아니라 개인 전문 개발자나 일반 사용자들도 특정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온라인 장터 ‘앱 스토어’에 올려 다른 사용자들이 활용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사용자 누구나 능동적 개발자로서 참여하게 되는 문호가 개방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2008년 7월 사이버 공간에 아이폰이 문을 연 이후 요즈음도 매달 1만개씩 이러한 소형 프로그램 앱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용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별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이폰은 재래 국내 시장에서 판매되던 제품들과는 달리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이 촉진되는 개방성과 다양성을 정착시키는 생태계를 조성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처럼 정보화 시대를 사는 첨단 소비자들의 심리와 행동 방식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제품에 적극 반영한 아이폰이 뒤늦게 국내 시장 판매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외국산임에도 불구하고 열광적 호응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바야흐로 그동안 목전의 이익 달성에 급급하여 개방과 공유, 그리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 시대 소비자들 기호와 요청을 수렴하는 것을 소홀히 하거나 경시해 온 국내 업체들은 국경의 장벽을 무력화시키는 정보화 시대 최첨단을 달리는 국내 소비자들에 의해서도 시장 주도권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딱한 상황이 목하 펼쳐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현대 소비자들의 기호와 염원에 부응하여 정보의 개방과 공유, 그리고 다양화를 가능케 한 아이폰이 이룩한 ‘소비자 중심으로의 시장 전환’을 결코 되돌릴 수도 없고, 또한 시도할 경우에는 자멸을 초래하게 될 뿐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한 외국산 휴대폰 시판으로 촉발된 사회 현상에 포함되어 있는 함의를 숙고하다가 저의 생각이 우리 한국교회와의 상관관계에 미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일견, 우리 교회는 오늘날 역동적인 성장세를 국내외에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에는, 신자수가 500만 명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과 국민적 신뢰도 면에서 다른 어느 종교 내지 교파에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장 높게 파악되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실상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우리 교회의 현실이 화사한 핑크색 빛깔을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확인하게 됩니다.
1990년대 이래 전국적으로 교회 구성원들의 고령화 현상이 간과할 수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당 주변에서 50대 이상 세대들의 활동은 도처에서 많이 눈에 띠지만, 30대 이하 청년 내지 청소년층을 만나 7,80년대와 같은 활동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여성 수도자들을 중심으로 성소 감소가 1990년대 후반 이래 이미 심각하게 진행하고 있고, 한국에 뒤늦게 진출한 일부 여성 수도회들은 철수 문제까지 심각하게 고심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7개로 늘어난 신학대학교에서 사제직을 준비하는 성직 성소 지망생 역시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2010년에 이르면서 감소 경향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으며, 질적 수준도 6,70년대에 비해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는, 그동안 1960년대 이래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이 진행되고 있는 서구 교회의 쇠락 과정이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지 못한 데에서 근본적 원인을 보고 있다고 자주 언급해 왔습니다. 그곳 교회 지도자들은 중세 이래 유지해 온 교회 생활양식을 시대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충실하게 고수하는 것이 불변적 신앙의 진리를 수호하는 처신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각 생활 영역에서 심층 차원에서 일기 시작한 사회 변화에 직면하여 교회 내외로부터 제기되는 물음들과 대두되는 요청에 대하여 진지하게 대응하려는 자세를 견지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교회로부터의 대규모 이탈 현상이 진행되는 한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수도회가 날로 증가하고, 성직자들의 감소와 고령화 사태로 말미암아 상주 사제가 없는 성당들이 증가하고 한 사제가 2,3개 본당 사목을 담당하게 됨으로써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일들이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회 당국은 신자들의 격감으로 말미암아 현저하게 약화된 재정 수지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교회 시설물들을 매각하면서 힘겹게 교회를 유지하기에 이른지 이미 여러 해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 현저하게 드러나는 노소세대의 양극화 현상이 미래를 어둡게 할만한 심각한 정도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미래 교회의 주역이 될 젊은 디지털 세대들의 기호와 염원을 읽고 교회 정책에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주변 외국 교회들에 비해 안정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고 간주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본당과 각종 부대시설, 유치원부터 대학교에 이르는 교육 기관, 방송국과 의료 기관, 복지 시설 등 비교적 훌륭한 ‘하드웨어’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하드웨어 시설들은 기성세대, 곧 ‘아날로그형’ 세대들에게 적합한 ‘소프트웨어’를 구축하고 활용하는데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수동적으로 처신하는 데 젖어 있어서 교회 당국의 가르침과 지시를 선선히 따르는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개방적이고 역동적이며 개성 강한 ‘디지털형’ 젊은 정보화 세대들의 다양한 기호와 염원을 수렴한 ‘소프트웨어’는 거의 개발되어 있지 않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지도자들이 이러한 작업의 필요성을 깨닫고 있기나 한지조차 의문입니다.
만일, 우리 교회 지도자들이 ‘시대의 징표’를 간과하고 과거 서구 교회 지도자들처럼 현실에 안주하면서 급변하는 시대에 제기되는 요청과 대두되는 도전에 부응하려는 쇄신 노력을 소홀히 할 때에, 그래서 자라나는 젊은 세대 교회 구성원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될 때에는, 수많은 국내 소비자들이 자신들을 폐쇄된 환경에 묶어둔 채 순응할 것만을 강요했던 국내 기업체들의 제품을 외면하고 ‘개방과 공유, 그리고 다양성’을 제공한 외국산 ‘아이폰’을 거침없이 애용하는 길을 택하는 것과 같은 사태, 곧 교회가 저들 세대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하는 사태, 서구 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평소에 유선 전화로 통화를 더 많이 하고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휴대폰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형’ 생활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카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제무대에서 웬가 주눅이 든 것 같던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새 세대, 이른바 ‘G(Global) 세대’ 젊은이들은 ‘개방과 공유와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형’ 생활을 향유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미래에도 오늘날과 같은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리와 전례, 그리고 생활양식을 전반적으로 ‘디지털 형’으로 대체해야 할 과업을 안고 있습니다. 저는 또 다른 제3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저에게는 바로 디지털 시대를 맞은 오늘의 한국 교회 모든 신자들, 특히 지도자들을 향한 간곡한 요청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마태 9,14-17)
이글은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연구 자료실에 실린 심상태 몬시뇰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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