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통합 게시판
생각해 봅시다 : 인권이 최고의 아동. 청소년 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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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아도 개성 강한 학생으로
“일기검사 등 부당한 일 건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눈떠
선생님의 폭력 줄어드는 학교
“사랑의 매는 이젠 버렸어요”
선생님도 수업방식·내용 바꿔
“학생들이 원하는 것에 무게중심”
토론수업·모둠수업 등 시도 확산
주입식 교육 패러다임 변화 조짐
경기도 ㅂ고 유자영(가명·18)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담임교사를 잊지 못한다. “저를 정말 많이 괴롭혔어요. 애들 다 보는 앞에서 회초리로 손바닥, 발바닥, 엉덩이 가리지 않고 때렸어요. 욕도 많이 들었고요. 방과후에 남겨서 ‘깜지’(종이에 빽빽하게 글씨를 채우는 일)를 시키기도 했죠.”
일기 검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엄마한테도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는 일을 선생님한테 억지로 써서 보여야 하는 게 정말 싫었어요. 내가 겪은 일, 생각한 일을 담임 선생님한테 보여주고 검사받아야 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갔어요.” 담임교사는 그런 유양에게 충분한 설명 대신 체벌과 욕설로 답했다. 학교에서 맞고 오는 딸에게 유양의 부모는 “맞아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유난스러운 딸이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라는 투였다.
2011년 3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유양은 그 일에 대한 위안을 받았다.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처음 시행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제12조 ‘사생활의 자유’에서 ‘교직원은 일기장이나 개인수첩 등 학생의 개인적인 기록물을 열람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에도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읽으면서 ‘선생님이 하는 부당한 말을 무조건 참고 들어야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프라이버시에 대한 유양의 감수성은 남다르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유양은 학생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려는 교사들에게 종종 항의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정신건강 검사를 실시했다. 담임교사가 유양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자영이 우울증 정도가 높게 나왔는데, 앞으로 이런 식으로 응답하지 않게 하시라”고 했다. “어디까지나 학교생활에 참조하려고 진행한 검사인데, 제 동의도 얻지 않고 무턱대고 부모님한테 그 결과를 이야기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학생인권조례의 세례를 받은 유양과 같은 ‘인권 키즈(kids)’는 교사들을 그저 귀찮게 하는 게 아니다. 교사들의 인권 감수성을 자극하면서 학교 현장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나름의 기여를 하고 있다.
경기도 ㅅ고 학생들은 올해부터 교실까지 신발을 신고 들어와 실내화로 갈아신을 수 있게 됐다. 지난해까지는 건물 현관에서 실내화로 갈아신어야 했다. 학생들이 몰리는 등교시간마다 현관이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였다. 이를 불편하다고 여긴 학생들이 교사들에게 직접 요구해 규칙을 바꿨다. “학생인권조례 이후 학생들의 의견이 학교 정책에 반영되고 있는 걸 느껴요. 그전엔 학교에 불만이나 건의사항이 있어도 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이 학교 김현태(가명·17)군이 말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눈을 뜨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서울 ㅅ고 최선주(가명·16)양은 천편일률적인 급훈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어느 여학생 반 교실에 가면 ‘지금 공부하면 남편 대학이 바뀐다’는 급훈이 걸려 있어요. 예전에는 우스개로 넘겼는데, 지금은 학벌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요. 직업을 차별하거나 직업을 이유로 인신공격을 하는 선생님들 이야기도 신경이 자꾸 쓰이죠.”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가장 큰 변화는 학생 각자의 개성을 존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번진 것이다. “도교육청에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신고하는 학생들을 보면 자신의 개성 실현권에 대해서는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학생들의 인권침해 문제를 신고받아 조사하는 김민태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이 말했다. “교문에 들어서면 외투부터 벗으라고 하는 교사에게 ‘외투를 입는 일이 왜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는 일인데요?’라고 학생들이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대드는 게 아니라 교사의 자의적인 생활지도를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반박하는 등 적법절차에 대한 인식도 생겨나고 있어요.”
학생들의 이런 변화는 학교 현장을 바꾸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시행으로 학생들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학교 현장에서 체벌 등 물리적 폭력도 점차 줄고 있다. 2011년 경기도교육청이 도내 학생을 상대로 조사한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 분석’ 자료를 보면, ‘일주일에 3회 이상 체벌을 당한다’고 답한 학생은 18.9%에 그쳤다. 반면 같은 해 대구학생인권연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일주일에 3회 이상 체벌을 당한다’고 답한 학생이 32.6%로 두배 가까이 됐다.
그 효과는 누적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인권조례 도입으로 인한 학교 현장의 변화가 기대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기도에서 인권조례가 처음 시행되던 2011년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된 학생들은 학교에서 누군가 때리고 맞는 광경을 보지 않고 성장하는 첫 세대입니다. 이들이 중고교생이 될 경우 교육 현장 전체에 걸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겁니다.” 홍인기 전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경기 상탄초 교사)의 진단이다.
인권 감수성을 갖춘 교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국어를 가르치는 박태진 경기도교육연구정보원 교사는 지난여름 아주대에서 인권교육 연수를 받았다. 이후 박 교사의 수업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학생들에게 반말 대신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려고 교단을 두드리는 데 쓰던 교편도 버렸다. “제가 가르치는 과목인 국어와 국문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성을 옹호하는 학문입니다. 인권 연수를 받으면서,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에 학생들도 포함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됐어요. 인간성을 옹호하는 학문을 가르치면서 사회적 약자인 학생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지요.”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시범학교로 지정한 수원 청명고에서는 인권친화적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3년째 진행중이다. 지난 5월16일 청명고 학생들이 체육대회에서 ‘전략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수원/김태형 기자 xogud44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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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을 존중하겠다는 교사는 수업 방식과 내용까지 스스로 바꾼다. 시험 성적을 높이기 위한 암기가 아니라, 여러 문학작품을 비판적으로 읽는 방식으로 수업에 변화를 주고 있다. “소설 ‘동백꽃’만 봐도, 점순이가 ‘니네 아버지 고자라지’ 하며 주인공을 모욕하는 장면이 나와요. 너무나 인권침해적이잖아요. 문학작품을 가르칠 때 이런 대목까지 학생들과 함께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올해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박 교사는 ‘저널 쓰기 및 문학 쓰기를 통한 인권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있다.
인권 감수성은 개인의 가치와 존엄에 주목하는 태도다. 학생들의 인권 감수성에 눈높이를 맞추려는 교사들은 수업을 대하는 관점 자체를 바꾸고 있다. “예전엔 내가 무엇을 가르치는가를 위주로 수업을 했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무게를 두고 수업을 구성하게 되죠.”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염경미 경기 세마중 교사는 지난해부터 모든 수업을 모둠수업 또는 토론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이후 토론수업도 더 활발해졌어요. 뭔가 발표를 잘 못한다고 해서 꾸지람 들을 걱정을 하지 않고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거든요.”
학생인권조례가 주입식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명숙 배재대 교수(교육학)는 “우리 학교는 21세기 아이들을 20세기 교사가 19세기 여건에서 교육하는 모양새다. 21세기는 아이들에게 협동과 자율을 요구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중하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창의력 있고 다양한 재주를 지닌 21세기형 인재를 기르는 교육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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