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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성지순례기 9
9일차 10월 26일 월요일 안개, 맑음
순례지에 도착할 때마다 그 지역에서 이틀을 묵고 떠나는 일정으로 계획하였기에 오늘은 최안드레아 수사님의 사목협력지인 르망교구 샤또 드 로와 성당을 떠나 다시 남서쪽의 까르까손으로 약 600㎞를 내려가야 하는 일정이다. 그곳은 조선 초대교구장이신 브르기에르 주교님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
오보스꼬 수사님은 어제 밤에 늦어서 돌아오지 못하고 오늘 아침에야 아침미사 전에 돌아왔다.
아침 먹을 걱정은 전혀 하지를 않아도 되었다. 항상 일찍 일어나서 밥을 압력밥솥에 안치는 박놀벨도 수사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요리를 준비하는데, 가지고 있는 한계성의 재료 중에서 찾아 만들어 가는 임기응변의 요리를 하면 되는 것인데, 모두들 고맙게도 맛있게 먹어주었다. 김바오로 수사님도 옆에서 거들며 마늘도 까고 감자도 자르며 도와주니 모두의 요리인 것이다.
아침밥 일부는 도시락으로 싸고, 나머지로 소고기 죽을 끓였다.
한국에서 우려 마시려고 가져온 우엉차를 그대로 넣고 기초물을 끓이니 향기가 좋다. 갖은 양념을 넣고 소고기 두덩어리를 넣으니 고기의 비린내가 하나도 나지를 않는다. 마지막으로 밥을 넣고 오래도록 끓이니 온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풍긴다. 주임신부님이 출장가시기를 잘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만의 한국음식냄새가 아닐는지…
아침미사를 최안드레아 수사님의 주례로 함께 봉헌하고 9시는 출발할 수 있었다. 떠나기 전 동네에 있는 마트에 가서 간단히 과일과 야채 그리고 약간의 부식을 구입하고, 오보스꼬 수사님은 은행에 가서 자신의 통장이 비었기에 현금을 입금시키는 작업을 했다. 그동안 채크카드로 준비하는 과정과 다니는 동안의 고속도로 통행료와 차량주유에 지출을 많이 했기에 통장잔고가 비었다는 것이다.
이틀을 묵었던 최안드레아 수사님의 본당 샤또 드 로와를 떠나 남서방향으로 향하다가 우리가 너무 배고프다고 노래를 부르니, 어느 성城에 들어가 호수옆 벤치에서 준비해간 점심을 먹게 되었다. 일반인에게 개방을 한 개인소유 성이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참 아름다운 호수와 정원을 가지고 있는 큰 저택이었다.
식사후 호수를 한바퀴 도는데 성과 호수가 어우러지는 가을단풍 경치는 환상의 그림엽서 그 자체 였다. 시간만 충분하였다면, 홀로 호젓하게 걸으며 사색하며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다시 긴장정의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휴게소에서 간간히 휴식을 취하며 함께 음료도 마시는데, 나는 그날 엄청난 영화배우를 만난 것이다.
그 유명한 영화 ‘원초적 본능’의 주연 ‘샤론스톤’ 부인을 만난 것이다. 우와~~~
눈을 돌릴래야 어디로 돌릴 수가 없었다. 그 옛날 영화에서의 젊은 모습은 당연히 아니었고, 현재의 나이 드신 모습이었던 것이다.
잠깐 인테넷을 검색해 보니, 그녀는 1958년생 개띠로 나온다. 중풍이 와서 10여년전부터 재활치료를 하다가 이제 겨우 연기생활을 재기한 인간승리로 나온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이름이 기억도 안 나는 어느 휴게소에서 내가 만난 것이다. 아들과 함께 있으면서 어느 표범의 화석이 장식되어 있는 곳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급히 박놀벨도 수사님께 카메라를 주며 찍어달라고 하고 그녀 옆으로 가서 미소의 눈인사를 하고는 사진을 찍었다.
주차되어 있는 차에 돌아와서 다른 수사님들께 자랑을 했더니, 프랑스에서 선교하는 수사님들의 답변에 맥이 빠진다.
“여기 여자들은요. 편의점 아가씨나 주유아가씨나 모두 다 샤론스톤이고, 맥 라이언이고, 니콜키드먼, 데미무어, 오드리헵번, 소피마르소로 보인답니다. 정신 차리세요. 수사님~” 하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박놀벨도 수사님은 “웃기고 있네. 사진 찍을 때 옆에 있던 그 여자가 샤론스톤이라고? 어디 말라빠진 여자가 없어서 그녀를 샤론스톤이라 하겠냐. 늙어 빠졌더구만.”
참내….. 나만 눈이 삐었나. 정말 샤론스톤이었는데…히히히
다음 휴게소에서는 김바오로 수사님이 맛있는 백포도주 두병을 사시며 인심을 쓰신다.
김바오로 수사님의 물건 아끼는 정성은 타의추종을 불허하신다. 우리 일행 중 제일 맏형님이시니 본인 또한 행동에 조심스러우신가 보다. 간간히 맛있는 저녁도 사시고,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은 포도주도 사주시며 형제들의 흥을 돋아 주셔서 염려했던 의견충돌 같은 것은 없고 도리어 확실한 의사표현에 우리가 대처하기가 편했다.
한번은 장거리 운행 중 강베드로 수사님이 김바오로 수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김바오로 수사님 제가 이태리 로마에서 그동안 유학생활하면서 참 외로웠거든요. 남들은 하나도 안그런 것 같은데, 저만 외로운 거에요. 왜 그렇죠?”
“강베드로 수사님이 외롭다고? 그게 정상야. 인간은 다 외로워~!” 하시는 답변에 옆에서 듣는 우리 모두는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우문현답인지, 현문우답인지 잘 모르겠다.
외로워?
그래! 그게 정답이야…… 인생은 다 외로워~~~ 이 명언(?)은 한동안의 여행 중에 우리 유행어가 되어서 웃음을 나누기에 충분했다.
저녁6시 이전에 까르까손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전 차중에서 또 다시 먹는 타령이 시작되었다.
“아~ 오늘 저녁은 밥하지 말고, 외식으로 기름진 중국요리 먹고 싶다.”
정작 숙소에 도착해서 마중 나와 계신 주인아주머니에게 집안열쇄를 인수받고 주변의 관광지도도 받았다. 내쳐 내가 질문을 해 보았다. 혹시 집 가까이 중국식당이 있느냐고… 아주머니의 답변이 바로 5분 거리에 그 식당이 있다는 것이다. 와우~~~ 오늘 저녁은 중화요리다.
우리 일행을 보는 아주머니의 눈빛이 당혹스러워 하신다. 일행에 여자는 없이 다들 남자들뿐이냐고… 하하하 (인터넷으로 예약했기에 우리 신분을 모르고 계시는 것이다. 굳이 알일 필요도 없고)
집안은 아주 깨끗했다. 2층집 한 채를 온전히 우리만이 사용하는 것으로 주차장과 정원이 조그마하게 배치되어 있고, 1층은 홀과 식탁테이블이 있는 식당과 주방, 세탁장, 2층은 더블베드 침실이 4개, 샤워실이 배치 되어있는 아담한 펜션이었다. 까르까손 시내 들어가는 초입에 있어서 아마도 싸게 빌린 듯 싶다. 식기와 가구들도 모두 새것 같다. 겉에서 보기에는 우중충하게 보였는데 안에 들어와 보니 아주 상큼하게 각방의 컨셉(사과방, 딸기방, 바나나방, 오렌지방)을 달리하여 벽지며, 베개색깔까지 디자인을 한 모양새였다.
마트가 문을 닫기 전에 이곳에 3일 동안 머물며 먹을 부식을 마련하자고 하여 바로 옆에 있는 마트에서 한보따리의 부식거리를 구입하고, 저녁식사하러 중화요리집으로 갔다. 저녁식사를 하고 포만감을 가지고 집에 들어오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이 편안했다.
다만, 박놀벨도 수사님의 안색이 안 좋아서 조금 걱정이 된다. 뭔 일인지 모르지만 몸이 안좋다고. 박수사님은 방에서 쉬게 하시고 나머지 수사님들은 낮에 김바오로 수사님이 사주신 백포도주를 마시며 편안한 밤시간의 환담을 나누며 그렇게 까르까손의 첫날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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