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죄의 종살이 –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제1독서 : 에즈 9,5-9 / 복음 : 루카 9,1-6
오늘은 오늘 독서 에즈라기를 보려고 합니다. 성경에 에즈라기라는 부분이 있었나 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시편, 욥기, 예언서 만큼 풍부한 내용은 아니지만, 가치가 있습니다. 관현악단에서도 모든 악기가 같은 소리를 내지는 않습니다. 음악이 완전하게 전해지려면 중요하든 덜 중요하든 제 소리를 내는 갖가지 악기가 다 필요한 것입니다.
유다교 전승에서 제2의 모세로 추앙받는 에즈라는 사제요 율법학자(에즈 7,11)로서 유다교의 기초를 놓은 인물입니다.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도우신다 또는 ‘주님께서 도와 주시는 이’ 라는 뜻)
에즈라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종임을 고백한다. 이 종들이 잘못을 저질러 바빌로니아에 유배를 갔고 상황이 바뀌어 페르시아 제국에서 종살이를 했지만, 이 모든 일을 하느님이 주관하시므로 그들은 결국 하느님 앞에서 종살이한 것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종살이로 피폐해진 백성을 되살려 주시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복구하게 해 주셨다.
오늘 독서에서 전해지는 에즈라 9장 에즈라의 기도를 봅니다.
“정녕 저희는 종입니다. 그러나 저희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 두지 않으시고, 페르시아 임금들 앞에서 저희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저희를 되살리셔서, 저희 하느님의 집을 다시 세우고 그 폐허를 일으키도록 해 주셨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다시 성벽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9절)
에즈라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셨다고 말씀드립니다. 에즈라기의 종살이는 바빌로니아에서 실제로 속박된 역사적인 종살이였습니다. 구약에서의 종살이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요? 신약에서 바오로 사도는 종살이를 갈라티아서 4장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전에 여러분이 하느님을 알지 못할 때에는 본디 신이 아닌 것들에게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알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그 약하고 초라한 정령들에게 돌아갈 수가 있습니까? 그것들에게 다시 종살이를 하고 싶다는 말입니까?
바오로는 우리에게 죄와 율법 아래 영적으로 속박된 종살이를 전해줍니다. 내적인 포로 상태에 있음을 전해줍니다.
우리는 죄의 종살이는 많은 부분에서 이루어 집니다. 7가지 죄로 표현 할 수가 있습니다. 일곱 가지 죄악, 즉 교만, 질투, 탐욕, 분노, 식탐, 음욕, 나태(칠죄종)입니다.
우리가 다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종살이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 중 하나가 이웃에 대한 질투로 험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칠극이란 책에서 베르나르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줍니다. “남을 헐뜯는 이는 독사보다도 해로우니, 그것은 독사는 한 번 물면 한 사람을 해칠 뿐이지만, 남을 헐뜯는 이는 한 마디의 말로 세 사람을 해치기 때문이다. 곧 자신이 그 하나이고, 듣는 이가 하나이며, 헐뜯음을 받는 이가 하나이다. 나라와 집안이 무너지고, 친구 사이가 멀어지고, 형제 사이가 떨어지 고, 부자 사이가 벌어지는 것이 모두 다 헐뜯는 말에 말미암는다“고 하였다,
우리가 질투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은 칠극이란 책에서 또 이렇게 전해줍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바라는 것이 없다. 하느님은 당신의 이익은 바라지 않는다. 오직 우리들의 이익만을 헤아릴 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받을 것은 바라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우리에게 주려고 할 뿐이다.
어진 이들이 남을 사랑하는 것 또한 이와 같다. 그들은 남을 위해서 남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다만 남의 이익만을 헤아릴 뿐 자신의 이익은 헤아리지 않는다.
오늘 독서 에즈라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에서 풀려나서 하느님께 고백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죄의 종살이에서 구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찬가지로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구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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