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눈여겨보라
1월 4일 수요일
눈여겨보라
오늘 복음말씀은 세례자요한의 제자인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고 그 제자 중에 한 사람인 안드레아가 그의 형 베드로와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줍니다. 이 복음말씀에서 나의 마음에 쏙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눈여겨보며”라는 단어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안드레아가 데리고 온 그의 형 시몬을 눈여겨보며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서 사람을 알아보는데 “눈여겨본다”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눈여겨본다는 것은 그냥 무심코 쳐다보는 차원을 넘어 자세히 유심히 관심을 두고 바라본다는 표현입니다. 시편에서도 눈여겨본다는 표현이 쓰이고 있습니다. “나 너를 이끌어 네가 가야 할 길을 가르치고 너를 눈여겨보며 타이르리라.” (시편32:8) 타이르기 전에 눈여겨봅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례자요한이 예수님을 눈여겨보고, 예수님이 베드로를 눈여겨보는 장면을 그려본다면 눈여겨보는 이들의 표정은 아마도 사랑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세례자 요한이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그런 엄청난 분을 바라보는 표정. 그렇게도 기다리던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만난 그 감격스런 표정.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자신의 나라를 승계해줄 후계자를 바라보는 표정, 자신과 똑같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사랑을 증거할 제자 중에 으뜸인 베드로를 눈여겨보는 예수님을 상상해보십시오. 우리 역시 그 사랑스런 눈빛에 감화되는 듯 느껴집니다.
사도요한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전승에 따르면 요한은 대부분의 제자들이 순교하였던 것과는 다르게 조그만 섬에서 자신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지내온 할아버지가 된 요한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죄를 짓고 악마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아파 하는 듯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뚜렷이 구분된다고 독서에서 힘주어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악마의 자녀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지릅니다. 오늘 제1독서말씀에 첫 구절부터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속는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려고, 악마가 한 일을 없애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고, 그 자비로 인해 의로운 일을 실천하고 자기 형제를 사랑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데, 왜 속는다는 말입니까?
요한 1서가 쓰여지던 당시는 ‘적 그리스도들’이 많이 활동하던 때입니다. ‘적 그리스도들’이란 대표적으로는 영지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만을 강조하고 육체를 지닌 예수님의 역사성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요즘 시대에 무엇에 속고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눈여겨보는 소중한 시간을 양보하는 양보정신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사랑이신 예수님을 눈여겨보고 그분과 사랑을 나눔으로써 그분에게 힘을 얻으면, 그리스도의 힘으로 의로운 일을 실천하고 자기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 마음 안으로 전해져야 의로운 일을 실천하고 형제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눈여겨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자요한이 예수님을 눈여겨보고, 예수님이 베드로를 눈여겨보듯이, 우리도 우리의 형제를 눈여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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