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나해 연중 제6주일 (마르 1,40-45)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2-02-11 19:24

조회
2584

나해 연중 제6주일 (마르 1,40-45)

 

 

하느님 체험과 침묵

 

찬미예수님! 오늘은 강론을 하기에 앞서서 질문을 한번 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은 진짜 계십니까? 어떻게 아십니까? 우리는 배워서 알고 있고, 잘 알지 못해도 믿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느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의 증거가 되지만, 더욱 확실한 것은 하느님 체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하느님 체험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와 그 전능하심, 그리고 무한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 안에서 하느님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만난 나병 환자도 하느님 체험을 아주 찐하게 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될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나병 환자는 잘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이렇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타나듯이, 예수님 시대에 나병환자들은 격리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이 나으면 하느님에 의해 깨끗해졌다는 것을 사제가 확인하고 율법에 따라 지정된 예식을 행해야만 다시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공동체로 복귀하기 위한 절차였던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그가 가엾어서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병을 낫게 해주고 공동체 안에서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러한 예식을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과거 구약시대에도 나병 환자가 하느님의 힘으로 나은 적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나아만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는 예언자의 말을 듣고 강물에 7번 씻어서 나병이 나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면, 예수님 이전에는 하느님에 의한 치유가 직접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어떤 행동이나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손을 대어 병이 나았다고 한다면, 그의 치유는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아직 유다인들의 지도층, 곧 사제와 율법학자들, 바리사이파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떨리고 심장이 멎을 정도로 하느님을 찐하게 체험하게 되면, 우리는 실제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체험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하느님 체험은 순간적이더라도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감미롭고, 너무나 벅차서 도저히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있으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내적으로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야 가능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주 율리아와 같은 이단들은 성모님의 기적이 나타났다고 하여 호들갑을 떱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느님을 체험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너무나도 무한하고 크신 그 존재감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발현과 같은 기적이 하느님에 의한 것인지 식별할 때에, 그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 침묵하는가를 살펴봅니다. 만약 오늘의 그 나병 환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침묵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고을에서 더 많은 하늘나라의 표징을 보여주셨을 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의 나병환자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을 새겨들으십시오.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 체험을 하길 바라지만, 우리가 침묵하지 않는다면, 그분께서는 더 이상 우리 안에서 드러나게 활동하실 수가 없습니다. 만약 가슴 깊이 하느님을 체험하신 적이 있으시다면, 진주를 다시 밭에 묻어두고 그 밭을 통째로 사는 장사꾼의 지혜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전체 1,662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662

예수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 부활 제5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5.21
|
추천 0
|
조회 1137
하느님의 사랑 2025.05.21 0 1137
1661

부활의 증인 – 성 마티아 사도 축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5.14
|
추천 0
|
조회 1636
하느님의 사랑 2025.05.14 0 1636
1660

말씀을 전하였다 – 부활 제3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5.07
|
추천 0
|
조회 2158
하느님의 사랑 2025.05.07 0 2158
1659

배반 예고 – 성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4.16
|
추천 0
|
조회 3894
하느님의 사랑 2025.04.16 0 3894
1658

말씀에 머무른다면 – 사순 제5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4.09
|
추천 0
|
조회 4086
하느님의 사랑 2025.04.09 0 4086
1657

계명을 스스로 지키고 – 사순 제3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3.26
|
추천 0
|
조회 4503
하느님의 사랑 2025.03.26 0 4503
1656

천사와의 만남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3.19
|
추천 0
|
조회 4336
하느님의 사랑 2025.03.19 0 4336
1655

듣고 믿어서 회개함 – 사순 제1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3.12
|
추천 0
|
조회 4483
하느님의 사랑 2025.03.12 0 4483
1654

먼지로 돌아감 – 재의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3.05
|
추천 0
|
조회 4651
하느님의 사랑 2025.03.05 0 4651
1653

새로운 복음의 방향 – 연중 제7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5.02.26
|
추천 0
|
조회 4882
하느님의 사랑 2025.02.26 0 4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