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나의 고백은 …
나의 고백은…(마르8,27-33)
이번 주간에는 마르코 복음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의 공생활에 관한 내용들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신 내용들이 선포되었고 오늘은 예수님에 관한 내용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에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 엘리야 등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한 대답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이러한 질문을 받았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정확하게 말을 합니다. 오늘 복음인 마르코 복음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공관 복음인 마태오 복음 16,17에서는 이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에게 알려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알주시지 않았다면 베드로도 그러한 신앙 고백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스승으로만 또는 예언자 중의 한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같이 함께 살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지켜보면서도 하느님의 도움심이 없었다면 베드로 또한 그러한 신앙 고백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러한 고백을 한 뒤 바로 예수님께서 수난하실 것을 예고하시자 이를 반박하다 사탄이라는 말까지 들으며 꾸중을 듣게 됩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따라 함께 살았던 베드로 역시 사람의 일을 생각하여 그러한 말을 하다가 예수님께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러한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라 고백하면서 그분을 따라 함께 살아가고자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님을 꿈꾸며 내가 생각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닐 때 우린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반박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또한 다른 사람들이 증언한 세례자 요한, 엘리야 등 예언자로 그분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예언자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 줄 메시야이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선포하는 예언자와 우리를 구원하실 그리스도는 그 차원이 다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자로 생각한다면 이는 큰 잘 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실수를 살아가면서 자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관점으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을 예언자로 착각하거나 아님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 베드로 사도가 보여준 모습과 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시는 그리스도를 꿈꾸며 그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도 나왔듯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수난하실 것을 명백히 밝히시며 자신의 가야할 길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이를 반박하는 베드로를 크게 꾸짖으십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야 함을 말씀하시며 인간이 원하는 길이 아닌 하느님이 마련하신 길을 가야 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느님이 마련하신 길이 아닌 내가 마련하는 길을 가고 싶어 합니다. 또 하느님의 뜻보다는 우리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요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함께 살면서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고백 할 수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예수님을 만들고 그러한 분만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를 바란다면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과 같이 그분을 예언자로 증언 하거나 아니면 원로들, 수석사제들과 같이 그분의 반대편에 서게 될지 모릅니다.
따라서 오늘 하루 자신을 돌아보며 난 진정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예수그리스도라 고백하는지 또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라 고백하기 위하여 얼마나 하느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지 돌아보는 하루 되었으면 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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