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마음의 평화
마음의 평화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평화가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2.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나오는 평화와 신약 성경에서 나오는 평화를 비교하면서 그 뜻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샬롬이라는 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먹는 것, 잠자는 것, 생활하는 것 등이 보장되며, 사회적 긴장, 불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평화라는 희랍어(에이레네)는 샬롬과는 달리 내적인 평화의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든지 내적으로 평화로울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3. 오늘 복음에서도 그렇습니다. 복음이 전하는 장면을 잘 보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십자가 상 죽음에 처해질 위기 직전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를 당부하여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 죽음과 수난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불안과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스승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그런 것을 없이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4. 오히려 앞으로 발생할 수난과 죽음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고, 그 앞에서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걱정거리와 문제거리, 불안거리가 눈앞에 있는데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주신 평화는 모든 근심, 걱정을 일으키는 문제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샬롬과 같은 평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평화를 주신 것입니다.
5. 그리고 이러한 평화는 믿음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준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 십자가 수난이 일어날 때에 제자들이 믿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세주라고 고백하고, 참으로 힘있는 예언자라고 고백했던 예수님께서 인간 세상에서 패배하여 죽임을 당하는 그 때, 믿음을 가지라고 오늘 평화를 주신 것입니다.
6. 그렇다면 무엇을 믿으라는 말입니까? 걱정거리와 근심거리 앞에서 무엇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오늘 복음 앞에 나오며, 지난 주에 우리가 들었던 요한 복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고아로 내버려 두지 않고,(요한 14, 18)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요한 14, 20)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죽음을 당하실 때,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하고 외쳤습니다. 그 뜻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곧, 죽음조차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는 징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것도 스승이 신성모독죄를 핑계삼아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 위에서 죄인 취급을 받고 죽임을 당할 그 때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셨고,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7. 오늘 매일 미사 책에 나와있는 복음 묵상에서 나카이 다카시라는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묵주알’과 같은 여러 신앙책을 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일본의 가톨릭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이 일본에 전교를 하고, 많은 수의 신자가 일본에 생겼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박해령을 내려서 약 250년 동안 천주교를 박해합니다. 그리고 나서 일본이 외국에 문물을 개방하면서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곳은 나가사키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곳에는 원자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궂은 핍박과 박해 속에서 이제는 신앙의 자유를 찾았다고 기뻐하기 시작한지 채 얼마도 되지 않아, 그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 신앙을 지켰던 사람들에게 원자 폭탄이 떨어진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양동이에 담아서 시체 수습을 하고 원폭 피해자로 남은 일생을 중병에 걸려 살아가야 했던 사람이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어떤 평화이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바로 그 때에 믿게 하려고 오늘 복음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이 우리를 저버린 표시가 아니라는, 그리고 우리 삶이 더 이상 절망 속에 놓여 아무런 인간적인 희망이 없을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구원을 위해서 계속 우리 삶을 이끌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9.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기도를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제 자신의 삶 안에 가득한 절망과 걱정과 근심거리에서 저를 벗어나게 해주시고, 그것이 주님의 뜻임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눈을 주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역경 속에서도 오히려 당신을 믿으며, 평화를 가지고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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