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과부와 그 아들의 문제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2-09-17 19:39

조회
1392

연중 24주간 화요일 강론

 

과부와 그 아들의 문제…”

 

 

1. 과부가 나타내는 표상

   과부는 남편을 잃은 여자입니다. 당시 고대 사회는 어디나 그랬었지만,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여서, 남자만이 경제적이고, 사회적이며, 종교적, 정치적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없는 여자라는 것은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으로 소외를 당하는 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적으로도 남은 인생동안 고독과 슬픔으로 가득 찬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모든 관계에서의 소외, 고독과 슬픔이야 말로 이 시대의 과부가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과부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남편을 대신해줄 아들의 존재입니다. 아들이 커서 성인이 되어 아버지 대신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 그것이 과부의 희망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아들, 특히 하나뿐인 아들마저 죽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인간적인 희망이 사라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2. 외아들을 돌려줌- 희망의 부활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과부에게 아들을 다시 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부에게 삶에 대한 인간적인 희망과 기대를 돌려주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적인 희망을 상실한 사람에게 그 인간적인 희망을 다시 돌려주시는 분이시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행적이 오늘 끝났다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또 다른 과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 요셉을 잃은 과부요,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를 십자가 위에서 잃은 마리를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3. 선물의 차이, 희망의 차이

   오늘 복음의 과부와 단 한가지 틀린 것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무엇을 주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은 아들을 다시 살려서 보내주었습니다. 아마도 아들은 과부와 함께 이전에 지냈던 것과 똑같은 삶을 지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 역시 아들을 돌려 받습니다. 그러나 아들 예수는 부활했지만, 곧 승천하여 자신을 떠나갑니다. 그렇기에 마리아는 아들이 다시 살아났지만, 이 세상에서는 아들을 잃은 과부와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리아보다 오늘 과부가 더 큰 선물을 받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오늘 아들을 돌려받은 과부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다음의 마리아가 가지는 희망의 차이를 발견해야 합니다.

 

 

  오늘 과부는 이전의 인간적인 희망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들은 또 다시 죽을 수 있는 것이고, 어쩌면 그 어머니가 기대한 인간적인 희망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오늘 과부는 희망을 되찾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꿈과 같은 희망인 것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알지 못하는 희망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승천 이후 성모님은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인간적인 희망이라는 것은 아들이 살아나기 전에도, 살아난 후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녀의 아들도, 남편도 다시는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인간적인 희망을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이 마리아에게 생겼습니다. 물론 마리아에게도 인간적인 외로움과 그리움, 인내와 고통의 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은 끝이 아닙니다. 지금 겪는 것은 모두 지나가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 자신에게 영원한 기쁨과 행복이 찾아올 것을 마리아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것을 뛰어넘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4. 또 다른 예

   이러한 성모님의 희망을 오늘날에 비추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 시대의 과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그 사람은 ‘이지선’씨입니다.

 

 

  명문대학을 다니고, 교회도 열심히 나가던 그녀는 자동차 사고 때문에 전신에 3도 화상을 당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입술과 눈썹도 없이, 손가락은 엄지손가락 하나만 남은 채 살게됩니다. 비참한 사고 끝에 살아난 뒤, 그녀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저러고도 살고 싶을까?’였다고 합니다.

 

 

  단지 외적인 모습이 바뀌었을 뿐인데도, 그녀는 삶에서 인간적인 희망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취직도, 결혼도, 밖에 그냥 나가는 것도 이전과는 다른 용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지선씨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오히려 많은 것을 얻고, 감사하게 되면서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중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 유일한 깨달음이다.”

 

 

  인간적인 모든 것은 뒤바뀌고, 흘러가며, 어떻게 될지 알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 유일한 진리라는 말처럼, 우리가 겪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우리가 이전에 가졌던 인간적인 희망을 다시 붙들려고 하는 것도, 그것을 다시 회복할려고 하는 것도 부질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이 끝난 후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잔치에 눈을 돌리는 것이 삶의 진정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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