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다해 성주간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강론 (요한 13,1-15)
오늘은 성 목요일입니다. 성 목요일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께서 거룩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사제의 직무가 탄생한 날이라는 뜻에서 사제들의 생일로 여기기도 합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명을 받들어 교회는 매년 발을 씻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겸손을 떠올립니다. 사실 겸손은 우리의 신앙 생활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겸손은 성령께서 거처하시는 자리’라고까지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상 생활 안에서도 우리는 겸손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인간이 겸손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이유는 겸손한 모습에서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드러나고, 그 겸손한 모습에서 하느님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발을 씻는 예식 안에는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그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예식에 참석한 우리 역시 그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예수님께서는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요한 13,12)
그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답은 오늘 복음인 요한 복음 13장 3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요한 13,3)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식의 의미가 이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쉽게 이해가 가시나요? 예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아신 것과,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주시고, 하느님에게서 나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기 전에 기억하셨던 이 두 가지 내용은 모두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맺고 있는 관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맺고 있는 관계는 바로 일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치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기억하신 이 두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믿는 사람에게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주시고, 또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순시기를 시작할 때 기억했던 것처럼,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나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쉽게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아버지께 대한 믿음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 그리고 일치를 가능하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기 전에 기억하셨던 이 두 가지를 아는 우리는 바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의 핵심인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러한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가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그 의미를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8)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을 몫을 함께 나누어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으실 몫, 곧 영원한 생명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고, 우리가 발을 씻어 주는 예식을 거행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에 주어진 영원한 생명을 서로 나누어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발을 씻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발을 씻는 예식은 오늘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아버지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가진 우리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영원한 생명을 함께 나누는 숭고한 예식입니다. 우리에게 더없이 귀중한 것을 직접 보여주시고 전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일본어 역)
聖週間 聖木曜日 主の晩餐ミサ
今日は聖木曜日です。聖木曜日がもつ重要な意味は大きく2つに分けて考えることができますが、ひとつはイエス様が聖体を制定されたことです。ですから、今日は聖体の秘蹟を行う司祭の仕事が始まった日であるという意味で、司祭の誕生日と考えられてもいます。 もうひとつはイエス様が弟子たちの足を洗ったということです。それで、イエス様がお命じになったことを受けて、教会は毎年洗足式を行います。
イエス様が弟子たちの足を洗ったのを見て、多くの人は謙遜について思い浮かべます。 実際、謙遜は私たちの信仰生活の中で非常に重要な部分を占めています。聖アウグスチヌスは‘謙遜は 聖霊が住まわれる所’と述べています。 そして、日常生活の中でも私たちは謙遜な人を好みます。人間が謙遜を本能的に好む理由は、謙遜な姿から人間を創造された神が顕れ、その謙遜な姿から 神に最も容易に出会うことができるからです。
ところが、洗足式の中には、それよりもさらに深い意味が隠されています。 今日の福音で、
イエス様は弟子たちがその意味に気付くことを望みました。 同じように、今日、この洗足式に
参加する私たちも、やはりその意味に気付くことをイエス様はお望みです。 そして、このように お尋ねになります。“私があなたがたにしたことがわかるか”(ヨハネ13章12節)。
私たちがその意味に気付くためには、イエス様がなぜ弟子たちの足を洗ったのかを知る必要があります。 その答えは、今日の福音のヨハネによる福音13章の3節に載っています。“イエスは、父がすべてを御自分の手にゆだねられたこと、また、御自分が神のもとから来て、神のもとに帰ろうとしていることを悟り”(ヨハネ13章3節)と書かれているように、このことばにイエス様が
弟子たちの足を洗ったことの意味が込められています。
ところで、皆さんは簡単に理解できますか? イエス様がこのようなことをご存知であることと、弟子たちの足を洗うこととにどんな関係があるというのでしょうか?
結論から言えば、父がすべてをご存知で、神のもとから来て神のもとに帰ることを知っている人は互いに足を洗い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 実際、イエス様が弟子たちの足を洗う前に思い起こされたこの2つのことは、イエス様が父と結んでいる関係に関することでした。イエス様が父と結んでいる関係は一致です。 そして、その一致の核心は愛です。
わたしたちもイエス様が思い起こされた2つことを知っています。 父を信じる人に父が全てを与え、また永遠の生命を与え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そして、四旬節が始まる時に思い起こしたように、私たちは神のもとから来て神のもとに帰ることを知っています。 私たちは簡単にわかっているように考えていますが、実際にはこのことに気付くためには、父に対する信仰と 永遠の生命に対する希望、そして一致を可能にする神様の愛が必要です。したがって、イエス様が 弟子たちの足を洗う前に思い起こされたこの2つのことを知っている私たちは、信仰、希望、愛を 知っているのです。
これが信仰生活の核心ですが、イエス様は今日このような信仰生活を送る私たちが何を実践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具体的に模範を示しているのです。 弟子たちの足を洗うことについては、
いくつかの解釈が可能ですが、イエス様は今日の福音でその意味を直接的に述べています。
“もし私があなたを洗わないなら、あなたは私と何のかかわりもないことになる”(ヨハネ13章8節)。足を洗うことは父から受けたものを共に分かち合うことを意味します。言いかえれば、
イエス様が弟子たちの足を洗ったことはイエス様が父から受けたもの、 つまり永遠の生命を弟子たちに分け与えられたことで、私たちが洗足式を行うのはイエス・キリストを通じて教会に与えられた永遠の生命を互いに分かち合うことを意味するのです。
今から私たちは洗足式を行います。この洗足式は、今日、私たちが見てきたように、父に対する信仰、希望、愛を持った私たちが、父から受けた永遠の生命を共に分かち合う崇高な儀式です。
私たちにこの上なく貴重なことを直接お示しになり、伝えてくださるイエス・キリストに感謝と賛美をささげま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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