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성녀 소화 데레사
2013. 10. 1
성녀 소화 데레사
오늘은 선교의 달 첫 번째 날, 선교의 수호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녀 대축일입니다. 이 성녀의 특징을 설명하는 긴 이름을 줄여서 ‘소화 데레사’ 성녀라고 부르는 축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선교란, 내가 믿고 따르는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고, 그들이 우리가 드러내는 삶에 함께 하기를 초대한다는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오늘 기억하는 예수 아기의 동정성녀 데레사는 세상 삶의 길이가 24년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생애를 세상에서 살다 가신 분입니다. 더더구나 그녀의 삶은 우리들처럼 세상풍파에 이리저리 시달린 것도 아니고, 가르멜 수도회라는 엄격한 수도회의 담 너머에서 사셨던 분입니다. 봉쇄구역 안에 살았던 분이기에 그녀의 삶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만, 그녀는 자기 삶의 실천방향을 사랑이라는 데서 찾았던 분입니다.
요즘 사람들도 누구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산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이 사라진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더 이상 사랑하기를 포기한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직 사람들 사이에는 사랑이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사랑의 범위가 좀 더 넓어져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을 ‘높아지는 문제, 높아지고 싶은 문제’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랐던 제자들이었지만, 높아지고 싶다는 문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서글픈 문제입니다. 제자들은 높아지는 데에 무슨 특별한 조건이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조건에 어느 정도 가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차원이 다른데 있었습니다.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겸손이라는 예상외의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선교의 달의 첫째 날에 기억하는 소화 데레사는 24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수도원 안에서 살았지만, 겸손이라는 특징을 보여준 분이었고, 교회는 그분을 선교사업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합니다.
하느님의 세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 오늘 전례의 말씀이나 데레사 성녀의 삶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뭔가 이룬 것 많고,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이 있을 때, 성공한 삶으로 평가하는 세상의 기준이 하느님 앞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 복음에도 나오는 내용이고, 데레사 성녀의 삶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피부에 와 닿는 일이 아닐 때에는 그렇게 놀랍고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가르침도 쉽사리 인정하지 않습니다. 현실에 바쁜 삶이기는 하지만, 몰라서 실천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알면서도 거부하는 것은 몰라서 하지 않는 것보다는 더 큰 문제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모두 안다고 해도, 내 삶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혼인해서 함께 살고 있는 부부가 있다면, 자기 배우자의 의향이나 삶을 더 먼저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두 번째 독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혼인한 사람이 배우자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혼인하지 않은 몸으로 살았던 바오로 사도는 혼인의 가치를 무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삶을 살든지 하느님의 뜻을 멀리하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데레사 성녀가 혼인하지 않은 몸으로 살았다는 것이 짧은 생애를 살았어도 성인으로 존경하게 하는 원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몸의 상태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몸의 행동을 지도하는 마음의 자세, 영혼의 움직임이 더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은 봉쇄 수도원 안에서도 끊임없이 복음전파를 위해서 기도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던 가르멜회의 수도자, 작은 꽃 데레사의 삶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그녀의 삶에 관한 짧은 묵상을 하면서, 성녀로 공경 받는 것을 부러워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으로만 끝난다면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작은 일을 크게 봤던, 성녀의 삶을 기억하면서, 세상 삶에서 우리도 작은 일들에 대하여 올바른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도우심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의 삶>
프랑스 북서부 바스노르망디(Basse-Normandie)의 알랑송(Alencon)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루이 마르탱(Louis Martin)과 젤리 게랭(Zelie Guerin)의 아홉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성녀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의 원래 이름은 마리 프랑스와즈 테레즈 마르탱(Marie Francoise Therese Martin)이며, ‘소화(小花) 테레사‘라고도 부른다. 그녀는 4살이 채 못 되어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버지와 함께 오빠가 사는 리지외로 이사를 하였다.
성녀는 어릴 적부터 특히 성모 마리아 신심에 출중했다. 7살 때부터 고해성사를 즐겨 받았고, 10살 때인 1883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석 달 동안 심하게 알았는데, 때로는 경련과 환각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의식을 잃기도 하였다. 그녀는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성모님께서 미소 지으면서 이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테레사는 1884년에는 첫영성체를 하고 그 얼마 후에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1886년 성탄 전야 미사 직후 ‘완전한 회심’을 체험한 그녀는 자신의 영혼 안에 애덕이 넘쳐 드는 것을 체험하였고, 또한 이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잊어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고 한다. 며칠 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그린 상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열망, 즉 다른 영혼들을 돕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머무르며 필요한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혈을 전해 주기로 결심하였다. 성탄절에 회심의 은총을 체험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자신의 소명으로 깨달았다.
하느님을 위해 고통당하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망을 지닌 테레사는 14세에 리지외의 맨발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를 청하였다. 이 카르멜 수녀원에는 이미 테레사의 두 언니, 마리(Marie)와 폴린느(Pauline)가 입회해 있었다. 그러나 그 수녀원에서는 테레사에게 21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통보하였다. 테레사와 그녀의 아버지는 교구의 주교에게 입회를 청하기도 하였고, 또 아버지와 언니 셀린느(Celine)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면서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게 개인적으로 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기도 하였다. 이때 교황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입회하겠지” 하고 대답하였는데, 그녀가 1888년 4월 9일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것은 나이 15세 때였다.
그 후 24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9년 반 동안 테레사의 수도원 생활은 지극히 평범하였다.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성격이 까다롭고 질투심 많은 곤자가의 마리아(Marie Gonzague) 원장수녀에 의해서 생긴 공동체의 내부 분열로 고통을 당하였다. 테레사는 수도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들을 멀리하고, 자신의 기도생활에 열중하였다. 수도원 규칙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작은 직무들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그녀가 이룬 하느님과의 친밀감과 충실성은 그녀의 자서전이 출판되기 전에는 그 어느 수녀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1893년 테레사는 수련장 서리로 임명되어 4년 간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 시기에 그녀는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갖고 살았다. 그녀의 ‘작은 길’에는 새로운 것은 없다. 오히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삶의 방법이 아니라 영혼이 하느님 앞에 서서 지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한다.
죽기 18개월 전에 처음으로 결핵의 증세가 나타났지만, 죽기 얼마 전 병상에 눕기까지 테레사는 수녀원의 기본 의무들을 충실히 지켰다.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의 시련을 겪었으며, 1897년 9월 30일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죽은 일 년 후 카르멜 수녀회의 통상 관습대로 그녀의 자서전이 비공식적으로 출판되어 여러 카르멜 수녀원에서 읽혀졌고, 이 자서전을 요구하는 부수가 점차 늘어나자 공식적으로 이를 출판하였다. 그 후 15년 동안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 수백만 권이 넘게 보급되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난 테레사에 대한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이 반응을 ‘폭풍과 같은 열광’이라 불렀다. 그래서 시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사후 50년을 기다려야 하는 교회 관례를 무릅쓰고, 교황 비오 11세는 테레사가 선종한 지 26년만인 1923년 시복식, 곧이어 1925년 5월 17일 시성식을 갖고 ‘아기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 선포하였다.
테레사는 로마를 순례한 것 외에는 고향인 알랑송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나 일평생 다른 영혼을 위해 보속하는 삶을 살았기에, 교황 비오 12세는 그녀를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ianciscus Xaverius)와 더불어 ‘선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하였고, 1944년 5월 3일에는 성녀 잔 다르크에 이어 프랑스의 제2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1997년 6월 10일 성녀 테레사를 보편교회의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녀가 남긴 저서로는 “성녀 소화 테레사 자서전”, “성녀 소화 테레사의 마지막 남긴 말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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